“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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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살기”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3.01.26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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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의 손을 잡다 (끝) 외로움 끝에 선 쪽방 주민들

서울 돈의동 쪽방촌, 그곳에서 만난 하나님
“터닝포인트 되어준 믿음의 사람, 참 감사”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5~40)
수천, 수백억을 들인 예배당이 랜드마크처럼 위풍당당히 서있다. 연합예배라는 이름으로 모인 수백명의 찬양대는 유수의 합창단 부럽지 않은 웅장한 소리를 뽐낸다. 5천만의 인구 중 기독교인이 천만에 육박한다고 자랑하는 우리나라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히 성찰해보아야 한다. 뾰족한 첨탑과 수많은 군중, 번듯한 옷들과 재물 사이에서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는 어디 계시는가.
예수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화려한 왕궁에서 귀족들과 어울리지도, 개선 깃발을 휘날리는 군대의 선봉에 계시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난한 군중들의 일상 속 거리에, 먹을 것조차 부족했던 들녘에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종의 형상을 자처하신 그분은 언제나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계셨다.
그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너희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과연 이 시대 교회의 시선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향해 있는가. 어쩌면 화려함에 눈이 멀어 우리 곁에 있는 ‘작은 예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3년을 시작하며 ‘작은 예수’의 손을 잡는 현장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서울시 종로3가역 인근 돈의동 쪽방촌에서 살아가고 있는 정홍조, 김재남, 김홍삼 씨(왼쪽부터)가 최근 신앙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앙을 갖고 삶이 변화되었다”고 고백하는 김홍삼 씨의 미소가 푸근하다.
서울시 종로3가역 인근 돈의동 쪽방촌에서 살아가고 있는 정홍조, 김재남, 김홍삼 씨(왼쪽부터)가 최근 신앙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앙을 갖고 삶이 변화되었다”고 고백하는 김홍삼 씨의 미소가 푸근하다.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3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돈의동 쪽방 골목이 나타난다. 대한민국 한복판 번화가 곁에 700여 쪽방들이 나란하다. 골목 초입, 구세군 유지재단이 운영 중인 돈의동 쪽방상담소가 서 있다. 
쪽방이라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이 이곳에 있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신앙을 갖고 나아가는 작은 예수들을 만났다. 노숙하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여전히 넘어질 때가 있지만, 신앙은 다시 일어설 힘이 된다. 돈의동 쪽방 주민 정홍조, 김재남, 김홍삼 씨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실망 주고 싶지 않아서…”
쪽방 골목에서 반장으로 통하는 김홍삼 씨(62)는 지난달 성탄절 예배 때 세례를 받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20대에 상경한 이래 술에 의지해 거리에서 살았다. 전국을 떠돌며 일하다 노숙하다를 반복했다. 제주도에서도, 심지어 일본에까지 건너가 길거리를 전전했다. 

술을 반복해서 마시다 보면 길바닥에 뒹굴 정도로 몸이 고통스러웠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다시 빈속에 술을 찾곤 했다. 그러다 3년 전 이곳 돈의동 쪽방 골목에 들어와 정착했다. 

“하룻밤 8천원이면 잘 수 있으니까… 하루 이틀 살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고요. 여기에서 권사님을 만나고 교회에 따라가고, 일자리도 생겨서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지난 일 년 동안은 빠지지 않고 교회를 나갔습니다. 권사님에게 실장님에게 실망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권사님은 같이 쪽방에 사는 감리교인 정홍조 씨, 실장님은 구세군 쪽방상담소 최선관 실장이다. 김 씨에게는 곁에서 손을 맞잡아준 신앙인들이 있었다. 지금은 초동교회 사회봉사부 정식 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생 거리에서 살았던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올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여전히 거리 생활의 자유로움이 생각날 때가 있다는 그는, 자신과 동행해주는 이들 때문에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했다. 

“믿음 안에서 제대로 생활 한번 해보자고 각오해요. 주님이 돌보신다는 말씀을 믿는 겁니다. 제가 쪽방 사람들을 많이 아니까 교회에서 하는 도시락 배달을 섬기고 있어요. 제가 교회에 안가면 장로님이 꼭 찾아오셔서 빠질 수도 없답니다. 허허”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이끄시든지”
정홍조 권사(66)는 2년 전부터 쪽방촌에서 살고 있다. 정 권사의 쪽방은 깔끔하다. 기자에게 원두커피도 내려주었다. 크게 사업을 했던 그는 항상 교회에는 다녔지만, 신앙생활은 성실하진 않았다. 술·담배와 유흥에 절어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 하나님께 돌아왔다. 사업이 무너지고 뇌종양을 비롯해 각종 질병으로 벼랑 끝에 섰을 때다. 어두움의 끝자락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비로소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다. 정 권사는 아내와 장성한 자녀들이 있지만, 여러 사정 끝에 돈의동 쪽방에서 기도하고 이웃을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이끄시든지 순종하려고 합니다. 쪽방 사람들을 섬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여기 들어와 일곱 명을 전도해 교회 등록도 도와주었습니다. 다행히 노령연금도 받고 있어서 손 벌리지 않고도 도울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기도 응답받는 생활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실제로 엔지니어 출신답게 정 권사는 주민들을 위해 궂은일을 찾아 섬기고 있다. “쪽방 주민들이 에어컨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응답됐다”고 좋아하던 그는 작년 여름 에어컨 88대 설치를 도맡다시피 감당하기도 했다.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분”
2개월 전 돈의동 쪽방으로 옮겨온 김재남 씨(53)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5년 동안 거리 노숙을 했다. 2016년 이후 거리에서 한 목회자를 만나 노숙인 사역에 몸담았고, 최근까지 노숙 경험을 바탕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 사역에 했다. 지금은 돈의동 쪽방에서 예배를 드리며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거리에 있을 때 다른 노숙인들과 달리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늘 혼자 다녔다고 한다. 혼자가 편했던 그는 교회에 나가곤 했다. 성경을 보면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 있구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가방에 성경을 넣고 다니다 공원 같은 곳에서 읽곤 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편안하기도 했지만, 삶의 회의가 들 때면 김 씨는 죽고 싶은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대로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시청 앞 대로에 뛰어들려고 할 때 누군가 내 손을 팍 잡는 거예요. 여자분이더라고요. 정동제일교회 다닌다는 수학 선생님이었는데, 이 분이 저를 위해 매주 하루를 내어주셨습니다. 성경을 가르쳐주고 공부도 시켜주었어요. 말로만 따뜻한 게 아니라 일년 동안 성경 말씀처럼 저를 위해주셨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지금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쪽방 주민들의 자활을 경제적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가 하나님 곁에 머물며 이끄시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쪽방상담소 최선관 실장은 “쪽방에선 신사도행전의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복음으로 삶이 변화되는 일들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한 손에는 빵, 한 손에는 성경’,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구호처럼 이분들과 함께하는 신앙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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