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에는 독특한 호수가 하나 있다. 분명히 호수인데, 사람들은 그 호수를 바다라고 부른다. 바로 사해(死海)다. 사해의 수면은 해수면보다 약 430m 정도 더 낮다. 사해보다 더 낮은 땅은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물이 흘러들어오면 물이 증발하는 방법 이외에는 빠져나갈 곳이 없다. 물은 증발하고, 그 안에 있는 염분은 계속해서 쌓인다. 사해의 물 속에 든 염분은 무려 31.5%라고 한다. 바다보다 10배는 더 짠 물인 것이다.
사해가 사해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염도로 인하여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간혹 요단강에서 흘러들어온 물고기는 사해의 염도를 견디지 못하고 즉사한단다. 수면이 낮으니, 물이 가두어진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받기만 하고 주질 않으니 결국 죽은 바다가 되는 것이다.
같은 요단강 물줄기와 연결된 갈릴리 호수는 완전히 다르다.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이곳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물고기를 낚았다. 이곳의 물은 거저 받고, 거저 주니 생명이 넘쳐나는 곳이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것을 내 안에 가두는 것은 결국 사해처럼 죽은 바다, 생명을 죽이는 바다밖에 되지 않는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8장 22절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당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재물과 그 소유의 포기는 곧 제자들의 전적인 헌신의 증거요, 구원의 길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인 포기가 아니라 의미 있는 포기, 어떻게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것을 사용하며 살 것인가가 중요한 주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하여주셔서 살아갈 수 있으며, 보혜사로 곁에서 도우심으로 잘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재물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다. 내 능력, 내 재능이 아니다. 우리는 청지기이다.
초대교회가 부흥한 이유가 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포함한 주의 제자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었기 때문이며, 교회의 모든 공동체가 자원하여 자신의 것을 나누고 함께 교제하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장 44~47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함께 교제하며 서로 사랑하니 모든 예배자가 하나님을 찬양한다. 또한 세상의 온 백성들이 교회를 칭찬하며 칭송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는 놀라운 부흥의 축복을 허락하여주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있니? 그렇다면 나의 피조물인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나의 사랑을 전해주기 바란다.”
김동기 목사 / 광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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