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워라밸’의 성경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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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워라밸’의 성경적 해석
  • 김동기 목사
  • 승인 2021.05.1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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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목사 / 광음교회 담임
저자 김동기 목사
저자 김동기 목사

 

‘워라밸’은 Work(워크, 일)과 Life(라이프, 삶), 그리고 Balance(밸런스, 균형). 세 가지 단어의 줄임말이다. 일할 때에만 일에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나의 휴식과 삶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일과 휴식의 균형,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 사는 것이 워라밸이 잘 갖춰진 삶이라고 말한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세밀하게 뜯어보면 얼마나 성경적인 해석이 가능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예배한다. 봉사한다. 사역한다. 한 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일을 준비하며 귀하게 쓰임 받는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 다짐한다. 예수님을 닮아가겠노라고, 말씀으로 살아가겠노라고, 사랑하겠노라고. 머지않아 그러한 다짐이 깨어지곤 한다. 윗집이 시끄럽게 굴면 층간소음 때문에 짜증을 낸다. 주차는 왜 또 그렇게 불편하게, 배려 없게 했는지 화가 난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들쑤시고, 밑에서 치고 올라온다. 사업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진상인가.

예배를 드리는 것과 살아감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배하며 사역한다. 말 그대로 Work다. 그런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삶도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하다. 영어로 Life, 이 두 가지의 균형(Balance)이 성경적이다.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느냐 물었다. 그때 예수님이 되묻기를,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고, 어떻게 읽느냐?”고 하셨다. 율법 교사가 말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런데 율법교사는 우쭐하며 자신을 의롭게 보이기 위하여 다시 물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사실 율법교사는 사랑을 베풀어야할 이웃의 대상을 같은 유대인으로만 제한하려는 의도를 갖고 물었던 것이다.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사마리아인은 이웃의 대상으로 절대 고려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들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할 충격적인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그것이 잘 알려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다. 

왜 예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 다음에 등장하기를 기대하였을 법한 평신도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던 사마리아인을 등장시켰을까? 우리는 부지불식 간에 우리의 이웃을 편협하게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등장시켜 우리의 습관과 생각과 패러다임을 철저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이 이야기의 핵심은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 명령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편견을 극복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 도와주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의 개념이 무엇인가? 우리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육체적인 수고와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대인을 도왔다. 순수한 자비와 사랑으로 이웃 사랑의 모범적인 실천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타적이며 조건 없는 사랑, 아가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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