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이 10점과 1점밖에 없는 영화가 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호러나 오컬트 영화여서 그럴까? 아니다.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선정적이거나 잔인해서? 혹은 특정 정치성향이 담겨서일까? 그것도 아니다. 12세 관람가의 이 영화는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한 사람의 평범한 삶을 다룬다. 영화를 관람한 국내관객은 벌써 25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평가가 자석의 양극마냥 갈린 이유는 뭘까.
이쯤 되면 대부분 눈치 챘겠지만 논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82년생 김지영’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주인공 김지영 씨가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차별을 덤덤하게 다룬다. 책 역시 문학 작품이 힘을 못 쓰는 요즘 100만부 돌파라는 기염을 토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비교적 잔잔히 흘러가는 영상과는 달리 영화를 둘러싼 인터넷 댓글창은 잔뜩 날이 선채 거칠기만 하다. 여성들의 삶을 잘 담아냈다며 찬사를 쏟아내는 10점짜리 평점들이 줄을 잇는가 하면, 그 뒤론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과장된 이야기일 뿐이라 비판하는 1점짜리 평점들이 던져진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뒷전으로 미루고 서로에 대한 조롱과 험담으로 일관한 댓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0점과 1점 사이 8점. 이 시대 남녀갈등의 깊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아닐까 싶다. 비단 남녀갈등 뿐이랴. 보수와 진보, 구세대와 신세대, 심지어 반려견을 키우는 사소한 문제를 놓고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은 우리 사회를 점차 병들게 하고 있다. ‘갈등 공화국’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사회, 분쟁과 반목을 끝낼 역할은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지 않을까. 이번 주는 먼저 82년생 김지영 논란으로 본 남녀갈등의 실태와 크리스천의 역할을 찬찬히 짚어본다.
남녀갈등, 20대에서 가장 첨예
20대 56%, 30대 28%, 40대 13%, 50대 6%. 각 세대에게 한국사회 가장 심각한 갈등요인에 대해 물었을 때 ‘남녀 갈등’이라고 대답한 비율이다. 30대 이상의 세대는 빈부갈등, 이념갈등 등 전통적인 사회갈등을 지목한 반면 20대는 무려 절반이 넘는 비율이 남녀갈등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비교적 심각한 남녀차별을 겪었던 기존세대보다 예전에 비해 차별이 개선됐다고 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오히려 더 깊은 갈등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여기엔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있다. 지속적인 여권신장으로 여성이 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 관련 이슈와 여성 차별 문제가 사회의 중심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첫 번째다. 2016년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과 82년생 김지영 도서의 출간으로 페미니즘 운동은 가속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20~30대 남성은 억울해했다. 변화된 시대를 살아온 자신들은 가부정적인 남성우월주의의 혜택을 받은 일이 없다는 것. 오히려 병역 문제를 비롯해 요즘엔 남성들이 ‘역차별’ 당하는 일이 많다며 호소했다. 이런 두 가지 흐름이 맞물려 젊은 세대의 극렬한 젠더갈등을 빚어냈다는 분석이다.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 성향 강화도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재영 교수는 “기성세대가 진영 논리나 이념 등 거대 담론에 관심이 많았던 반면 젊은 세대는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훨씬 더 민감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남녀 차이에서 오는 한국사회의 갈등과 남녀 각각 나름대로 느끼는 차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극단적 성향을 가진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이 각각 20대 남성, 20대 여성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으로 ‘과대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상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의견이 보다 주목받기 마련이고 이런 소수의 활동이 마치 20대 전체를 대변하는 의견처럼 비춰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대표 현상을 감안해도 남녀갈등 문제가 젊은 세대에게 가장 첨예한 사회 이슈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교회 내 가부장제 먼저 극복해야
10점과 1점으로 벌어진 간극을 좁힐 길은 어디에 있을까. 교회가 마땅히 대안이 돼야 한다고 외치고 싶지만 적어도 남녀 문제에 한해선 현실이 다르다. 오히려 교회가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 내의 남녀 차별과 갈등요소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나온다.
정재영 교수는 “기독교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들은 대체로 보수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성격이 강하다. 기독교를 포함해 종교지도자들의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때문에 기독교가 사회의 성차별을 극복하고 갈등을 해소하려고 하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오히려 사회에 뭘 해주려고 하기 보다는 기독교 안에 있는 성차별을 상쇄하고 약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청년사역연구소 이상갑 목사 역시 “교회가 워낙 보수적이기 때문에 남녀 갈등 문제에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라면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교회가 여성들에게 계속해서 상실감을 안겨준다면 복음전파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의 지적대로 지금의 한국교회는 사회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인 성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상당수 교단은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주지 않고 있고 식당봉사는 여성 교인들의 몫으로 고정돼 있다. 지난해 IVF와 교회탐구센터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 성차별적이거나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듣고 뛰쳐나온 경험이 있다는 20대 여성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 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성경에 가부장적인 요소가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성경 해석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어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강단에서의 성차별적 발언이나 여성에게만 내맡겨진 봉사의 경우라면 성경 해석의 문제로 변명하기 힘들다.
정재영 교수는 “여성안수와 같은 문제는 교단마다 전통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그런 전통과 여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언행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면서 “사회보다도 뒤쳐진 성차별적 요소들을 교회가 스스로 극복하고 난 이후에야 남녀갈등 문제의 중재자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상갑 목사는 갈등 해소를 위해 여성을 더 세워주는 교회가 될 것을 주문했다. 이 목사는 “사회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여성우대정책에 반발해 ‘역차별’이라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교회는 다른 세상인 듯 고요하다”면서 “지금의 교회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 안과 밖의 여성들을 세워줘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당회와 총회에서 여성 장로 비율, 여성 총대 비율을 확대하는 등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목사는 또 “성경에서 노예제도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지금의 교회가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남성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성경을 읽어 왔다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성경을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세계관의 변화로 이어져야 시대를 선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남성중심의 고령화된 교회문화가 지속된다면 정체를 넘어 쇠퇴하는 것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