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성도의 교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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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성도의 교제라고?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9.05.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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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89)

사도신경>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새번역)

나의 동화책 중 “짝꿍 바꿔주세요”가 있다. 거의 20년이 넘도록 아이들이 사랑하는 책이다. 이 책을 주제도서로 삼아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강연하는 기회가 많은데, 그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내 인생에서(좀 우스운 표현이지만) 제일 먼저 바꾸고 싶은 사람은?” 답이 어떻게 나올까? 놀랍게도 “엄마”가 전국 어디서나 1순위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사람도 엄마이다. 

이런 이상한 심리가 교회 안의 구역예배, 목장, 셀, 순, 다락방 등등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룹에도 있다. 나 역시 교회의 셀 구성원으로 있는데, 크고 작은 일들이 쉼없이 일어난다. 그 모양새는 마치 초등학교 교실의 짝꿍, 친한 친구, 싫은 아이... 이런 관계같다. 좋게 표현하면 알콩달콩 사랑을 엮어가는 작은 정원이다. 그러나 보이는 대로만 말하자면 아이들 투정질, 싸움터같은 게 성도의 교제이다.

그래서인지 교회마다 은밀하게 ‘목장 바꿔주세요’ ‘구역장 바꿔주세요.’ ‘나를 다른 셀로 옮겨주지 않으면 교회를 옮길 겁니다.’ ‘우리 다락방은 식사하는 데에 너무 신경을 안 써요. 요즘은 그런 게 얼마나 중요한데...’ 심지어는 ‘우리 리더는 자기자랑하려고 목장예배 드리는 것 같아요(또는 리더가 너무 무식해요)!’ 라며 목회자들에게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우리 셀모임에서도 찌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면 모든 모임의 끝은 이렇게 되는 게 뻔한 것이다. ‘셀을 위해 더 기도하고, 서로를 감싸고, 중보기도하자! 파이팅! 주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평생 작가로 사는 극히 개인주의 성향의 나에게는 셀모임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번 시끄러워진 기회를 핑계로 셀을 탈출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폭탄선언을 하려고 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성도로서 살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5살 때부터 고백한 사도신경이니 내 삶의 시간 속에 얼마나 수없이 외우고, 말하고, 읽었겠는가. 하지만 그 순간에는 벼락처럼 사도신경의 이 구절이 내 심장을 내리쳤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모두 5가지에 대한 믿음고백으로 마무리되는 사도신경. 나는 깜짝 놀랐다. ‘성령! 교회! 죄용서! 몸의 부활! 영생!’ 이 어마어마한 주제 속에 그깟(내 생각에) ‘성도 교제’도 함께 있는 거야? 말도 안 돼! 성도의 교제가 뭐라고? 감히 영생이나 부활과 같은 위치에 있어? 성도의 교제라는 게 교회에서 임의로 짝지어줘서 목줄잡아 끌리듯하여 강제로 만나는 사람들인데.. 그래도 교회는 참으로 신비한 곳이라 구역 식구들 앞에서는 모두가 이빨 빠진 늑대, 발톱 감춘 이리, 혓바닥 삼키는 뱀, 눈물 흘리는 호랑이, 때마다 밥 사는 곰, 재주 부리지 않는 원숭이, 무슨 말을 해도 화내지 않으려고 뿔내지 않는 염소가 된다. 

하나님이 아니면 사실 짐승같은 우리들이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 눈에 ‘그깟 성도의 교제’를 놀랍게도 ‘부활과 죄사함과 영생’의 자리에 나란히 놓아주셨다.  

성도들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도의 교제를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주님이 이처럼 성도의 교제를 아끼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면, 나처럼 당장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아니, 교회의 갈라진 미세한 틈들을 단단히 메꾸는 구역예배로, 셀 모임으로, 목장지기로 충성하려고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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