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 뭐라구요?”
“지금 방 하나 도배하고 왔다구요~ 캄보디아에서 선교사님 부부가 일 년 동안 안식년을 맞아 들어오시는데 그 부부가 사용할 방을 도배했어요.”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에서 올해 교육부장으로 섬기고 있는 고혁성 목사님과의 대화입니다.
“아니~ 집도 좁은데 방 하나를 그것도 일 년씩이나 다른 부부에게 내 주세요?”
고 목사님은 그것보다 더 한 것도 해드릴 수 있는 선교사님이라며 캄보디아 박경희 선교사님의 스토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전도사 시절에 인천에서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던 박경희 선교사님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사모님을 만났답니다. 이 부부는 모든 재산을 팔아 볼리비아 선교사로 나가 7년 동안 학교사역과 교회사역을 했습니다. 고국에서 가지고 간 재산을 다 선교지에서 사용했고, 고산병이 걸려 미국에 가서야 겨우 치료를 받았답니다.
며칠 전 고혁성 목사님과 박경희 선교사님을 직접 만나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볼리비아에 가지고 간 재산을 다 내려놓고, 다섯 식구가 미국으로 들어갔을 때 수중에 우리 돈 약 2백만원 정도만 남았답니다. 치료를 마치고 미국교회에서 다시 선교사를 파송됐는데, 파송 조건이 산이 높지 않은 지역이었고, 그 곳이 바로 캄보디아였구요.
선교사님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55명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은 학교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시더군요. 최소한 학교에 있으면 삼시세끼는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공동체로 생활하며 선교하는 게 아무래도 저는 버거워 보여, “괜찮으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삼형제가 어릴 때는 먹을 것도 같이 먹고 생활도 함께 해야 하니까 부모로서 조금 그런 면은 있었지만 괜찮았습니다. 행복했구요. 지금 23년차 선교사이지만 아이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자라줘서 큰 아이가 카이스트 박사로, 둘째는 연세대학교로, 셋째는 송도에 있는 뉴욕주립대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슬쩍 물었습니다. “안식년은 언제까진데요?”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희 교회 장로님들 카톡방에 글을 잠깐 남겼습니다.
박경희 선교사님이 한국에 계시는 동안 한 달 백만원씩 우리 교회가 섬겼으면 좋겠다구요. 사실 목회하면서 제게 들어오는 요청의 80% 이상은 거절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년씩이나 방을 기꺼이 내어주는 고혁성 목사님도 대단해 보였고, 자기의 안락함을 내어놓고 캄보디아에서 학생 55명과 공동체생활을 하며 그 아이들을 제자 삼고, 그 중 20여명의 대학생들을 한국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할 수 있도록 돕는 박경희 선교사님도 제 눈엔 너무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보였거든요.
새벽기도 시간에 박경희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잠깐 했더니, 우리 교회에서 두 분이 그분이 계시는 동안 선교비를 당신들이 섬겼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가 감당하려고 했었는데, 적지 않은 금액의 선교비를 감당하겠다고 금방 연락이 왔네요.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박경희 선교사님의 일이 진행되는 걸 옆에서 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생각이 되더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로 나가는 분도, 하나님을 사랑해서 기꺼이 자기의 방을 일 년씩이나 누군가에게 내어 주는 분도, 하나님을 사랑해서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선교사님에게 적지 않는 선교비를 지원하는 분도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