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15-25> ...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110년만의 폭염이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 하루를 시작한 듯한 2018년의 여름이다. 그래서 나는 110년 전이라는 1908년에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일제강점기 때라 그런지 일본은 우리나라 곳곳에 개화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공공시설물 공사를 하며 탄압의 가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소년’이라는 잡지도 창간되고, 세브란스 의학교 제1회 졸업식도 거행되며, 장로교와 감리교의 합동 찬송가도 발간되었다.
냉장고, 선풍기, 에어컨이 없던 시절, 게다가 일제치하 속에서 1908년의 여름은 얼마나 뜨겁고 잔인하며, 답답하고 서글펐을까? 하지만 그 폭염과 막막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가르치고 배우며, 나고 죽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생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여 오늘까지 이른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과 430년의 이집트 노예시절을 통과한 것처럼. 우리 조상들도 덥다하여 산속으로 들어가고, 춥다하여 굴을 파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나라가 짓밟혔다고 모두 주저앉거나 임금이 없다고 모두가 변절자가 되어 일본에 엎드리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간 속에서나 공간에서나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역사는 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되고, 퇴보나 발전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굴레를 반복하며 인류사를 기록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무더운 여름,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일상 속의 여러 습관 중 하나인 성경읽기를 시작했다. 덥다하여 땅 속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110년만의 폭염이라고 하루의 과정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차가운 커피가 그득 담긴 머그잔을 앞에 두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밤새 틀어놓은 선풍기는 이미 기절상태(?)라 아예 꺼버렸다. 목에 수건을 감고, 성경책 위에도 수건을 올려놓고, 더위와 한판 붙는 심정으로 요한복음을 읽었다. 그런데 18장을 읽는 도중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 먼저 대제사장의 집 뜰로 가게 되신 예수님, 그리고 멀찍이서 예수님의 상황을 살피는 베드로. 18장 16절부터 성경은 베드로에 집중한다. 그리고 먼저 이런 배경 설명이 나온다. ‘그 때가 추운(It was cold)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여기서 ‘함께 서서 쬐더라.’는 ‘warming himself’로 직역하자면 ‘자신을 따뜻하게 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표현이 25절에도 나온다.
추운 새벽. 살벌하면서도 긴장감과 다음 상황이 궁금해지는 분위기. 한 사람의(예수님)의 생사가 결정되어질 순간. 그리고 온갖 조롱과 위협하는 무리 속에 홀로 서 계신 예수님. 건장한 베드로가 추위를 심하게 느낄 정도였다면 예수님 역시 중동 지방의 새벽 추위와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 뼛속까지 시린 추위에 감싸있지 않으셨을까.
그렇지만 이때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그 한 몸을 녹이려고 자신의 육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슬금슬금 저도 모르게 불 곁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인공모자들 안으로 자청하듯 한발 한 발 들여놓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불기운’은 얼마간 베드로를 따뜻하게 해주며, 추위와 공포, 걱정과 두려움을 어느 정도 녹여주고 풀어주었던 것 같다. 그 바람에 베드로는 자신의 영혼과 정신마저 작은 불더미에 녹는 줄도 몰랐는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다.
예수님의 죽음이 눈앞에 있는 순간이지만 당장 자신의 추위를 녹이는 게 더 중요하고 필요한 베드로. ‘함께 서서 쬐더라.(warming himself)’ 생각해보라. 우리는 삶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이 깊이 불곁으로, 때로는 차가운 얼음덩이 앞으로 달려가는가. 삶이 무덥고 숨 막힐 때에는 당장의 시원함을 얻으려고! 또, 인생길의 여러 문제가 꽁꽁 얼어붙고 결코 한 뼘도 녹지 않을 것처럼 여겨질 때에는 우선 해결하느라 붉은 불 곁으로 구걸하듯 다가가고!
요한복음 18장을 몇 번이고 읽는 동안 나는 등이 서늘해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함께 기도
하나님. 너무나 자주 어리석게 움직입니다. 알면서도 당장의 어려움과 고생을 감당하기 싫어서, 헤쳐나가는게 힘들다고 바로 발을 돌립니다. 그래서 불길 곁으로, 시원하게 해 줄 얼음동굴 앞으로 달려갑니다. 옷자락이 불에 타는 줄도 모르고, 얼음에 두 발이 서서히 얼어가는 줄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 따뜻함이나 시원함에 빠집니다. 급기야는 손바닥만한 믿음마저 불에 태우거나, 한 움큼의 신앙고백마저 얼려버립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소서. 일상의 문제 앞에서 그렇게 쉽게 지지 않게 등짝을 세차게 때려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