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9·11 미국테러 대참사로 인해 종교이데올로기가 지구상의 평화에 중요한 변수로 떠 올랐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한해였습니다. 중동문제를 둘러싼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과 충돌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 없는 타종교·타문화권 연구와 그들을 대상으로한 선교에 전문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굳이 ‘문명충돌론’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교이데올로기 문제는 언제 또 어떤 사건을 유발할 것인지 평화에 대한 불안정한 변수로서 현실문제가 되었다는 점이 올 한 해 부각된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쉬웠던 점은 남북관계가 다시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답보상태에서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북한 당국에 대한 회의론과 신뢰성 문제가 북한동포돕기운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정체상태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앞으로 북한선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방안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가 사회를 향해 이렇다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아직도 사회적 스캔들에 기독교인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교회 내부문제들이 일반 언론에 오르내려 위상이 더 추락한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불신자들이 교회를 ‘매력 없는 곳’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 왜 한 해가 다가도록 신뢰를 회복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가 안타까울 뿐이지요. 맛을 내는 소금이 아니라 밟히는 소금이 되어선 안되는데 말입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2001년은 사회 전체적으로 암울한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한 해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거나 교회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회가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성공지상주의(권력욕)가 주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캄캄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조차 갱신되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얽매여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다는 지적을 들을 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사회에 희망을 주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러한 기능이 표류하고 있거나 오히려 이기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복음은 전파됐지만 복음화는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이기주의를 탈피하지 못하는 한 교회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겉모양은 그럴듯 하지만 속은 물질주의, 욕심에 깊이 빠져있는 모습을 회개하고 올바른 신학을 뿌리내릴 때 비로소 교회가 바로 설 수 있고 나아가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속화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겉으로는 교회를 위하는 것같이 행세하지만 속으로는 성경이나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말씀입니다. 정보기술(IT) 혁명이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이에 대처하는 노력들이 활발한 한 해였습니다. 그런데 과학기술 발전은 긍정적인 역할도 있지만 역기능도 매우 우려할만 합니다. 과학기술 혁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편리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세속화를 부채질하고 인간성 파괴와 가정을 파괴시키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신앙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경계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도 유념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선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을 선용하면 선교에도 유익합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힘든 오지에도 정보를 보낼 수 있고 청소년들에게 사이버공간을 통해 선교영역을 넓힐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방안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교회는 여러가지 면에서 사회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제자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곧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배 행위로만 그쳐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삶은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말이나 생각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체계적인 신앙교육(훈련)이 필요한 것이지요.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믿음을 생활화해야 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렇게 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제자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회 각계 각층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이 아니겠습니까?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회 밖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리더십 창출을 위해서는 제자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던 자들이 변화된 모습으로 사회 각계 각층에 흩어져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해 나가면 사회도 가정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지요. 이렇게 바른 신자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도록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신자들을 훈련시켜서 가정과 직장, 사회로 파송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체계적으로 제자훈련을 실시하여 교회 정착율 97%, 출석율 94%의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새롭게 시도했거나 좋은 결실을 얻었다고 보시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것 입니까? 가정교회(셀목회)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가정교회(cell)는 보통 6가정(12명)씩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서 회중교회(전체)에서 경험하지 못한 예배와 교제 선교 전도를 경험하게 하는 시도입니다. 대예배에서 들은 설교를 셀그룹 가족들이 다시한번 함께 생각하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서로 나눕니다. 특히 새신자들이 교회에 나오기 전단계로 셀그룹에 인도되면 교회 정착율을 높일 수 있지요. 셀그룹 가족들과 먼저 친교를 나눔으로써 신앙생활에 적응력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교회에 나가도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서먹서먹하겠습니까? 셀그룹은 이런 어색한 감정을 갖지 않게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셀교회 가족들은 그들 자체적으로 선교활동도 벌이고 있어 신앙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있지요. 저는 가정교회(셀목회)가 21세기 교회 성장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시도해 보니까 결석하는 사람이 없고, 가정교회에 모이는 시간을 기다리고, 끝나면 헤어질 줄 모를 정도로 서로 가까워집니다. 수많은 회중 속에서는 진정한 코이노니아(친교)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소그룹을 통해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눔과 섬김’의 사명을 감당할 때 기쁨이 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교회는 올해도 지역주민들을 위해 교회 시설들을 개방, 주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초·중·고교 써클 활동이나 발표회를 위해 교회를 개방하고 ‘21세기 홀’은 지역주민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습니다. 바자회 등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고 농어촌 은퇴 목사 집짓기운동에도 동참하고 어려운 주변 노인들에게 주1회 식대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교회’로 개방할 때 교회를 찾는 이웃들의 기뻐하는 모습에서 저희도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올 한 해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더욱 이웃에게 다가가는 교회가 되도록 힘주시길 기도하는 마음뿐입니다.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