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제사장 한 명이 바른 예배 드리는 일에 큰 역할을 한다. 우리는 나 한 사람이 먼저 좋은 리더가 되어 하나님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나 한 사람이 예배의 방해꾼이 될 수 있고, 하나님께 더 좋은 예배를 드리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모두 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데에 항상 드려져야 한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84:4)
5.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은 후에 제사가 무너졌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대하 24:17~18)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면 안 된다. 요아스 왕은 자기를 구해주고 왕까지 세워준 은인 여호야다 제사장의 가르침을 버리고 다시 우상 숭배자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는 길로 갔다. 왕의 신앙이 왜 무너지는가?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여기서 방백은 히브리어로 ‘사르’로서 ‘지도자, 우두머리, 장, 군주, 통치자, 지배자’를 의미한다. 방백들은 유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많은 지도자들을 말한다. 이들이 왕에게 절했다는 것은 왕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제 우리와 함께 협력하여 일을 하자는 숨은 뜻이 있다. 즉 우리의 의견을 따라 나라를 다스려 달라는 요청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면 받고, 받으면 주어야 한다.
유다 방백들의 생각과 제사장들의 생각에는 많은 차이가 난다. 정치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의 생각은 분명 차이가 난다. 유다의 방백들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그가 죽자 자기들의 방식대로 나라를 이끌어 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왕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다. 결국 왕은 제사장의 길을 버리고 방백들의 길을 따랐다.
한번 무너진 신앙은 바로 세워도, 그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시련과 고난을 당하게 된다. 여호야다 제사장의 시절과 그 이전의 시절을 보면 아달랴의 통치를 통하여 수많은 지도자들이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여호야다가 죽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가 죽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여 왕의 마음을 미혹시켜 우상 숭배의 길로 가게 했다. 원수 마귀는 숨어 있다가 기회만 되면 다시 나타나 믿음을 역행하게 만든다. 성도들은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