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입시지옥’을 벗어나 꿈에 그리던 캠퍼스에 입성했지만, 이번에는 ‘입사지옥’이 서서히 숨통을 죄어온다. 팬데믹 여파로 더욱 극심해진 취업난에 누군가는 창업에 도전장을 내밀지만 이 또한 막막함에 고개를 떨구는 형편이다.

잇단 실패로 구직을 단념한 ‘고립·은둔 청년’도 증가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방치할 경우 연간 약 7조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한다. 미래에 대한 젊은층의 불안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정부는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청년들의 건강한 사회 진출과 복귀를 돕는 교계의 움직임이 반갑다. 풍부한 자원을 지닌 교회들이 장점을 십분 살려 ‘취·창업’을 지원하고, 사각지대 청년 발굴에 나선 것. 교회의 따뜻한 손길에 힘입은 청년들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깨닫고 소망을 키워간다.

취업전쟁의 돌파구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취업문이 바늘구멍보다도 작아지는 모양새다. 요즘 4년제 대졸자의 첫 취업 평균 소요 기간은 8.2개월, 월평균 지출 비용은 10~30만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청년 구직자들의 심리적 압박은 물론 각종 학원비·교재비 등 경제적 부담도 커졌다.

그런데 취업전쟁에 뛰어든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교회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교회의 인프라와 성도들의 재능기부가 더해져 △취업박람회 △취업멘토링 △취업특강 등 다양한 구직활동을 무료로 지원하는 것.

오륜교회(담임목사:주경훈)는 올해로 8년째 ‘크리스천 취업스쿨’을 개최한다. 기본적인 ‘직무적성검사’부터 ‘자기소개서 작성법’ 및 ‘모의 면접’까지 취업의 A to Z를 알차게 다룬 커리큘럼 덕분에 청년들 사이 반응이 뜨겁다.

여기에 사회 다양한 직업군에서 활약 중인 성도들은 ‘멘토’로 든든한 지원사격에 나선다. 오륜교회 김훈태 목사는 “이들은 대기업 인사담당자를 비롯해 각 분야 종사자들로 ‘전문성’을 확보한다”며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도 참여해 조언을 전한다”고 설명했다.

매년 급변하는 취업시장의 트렌드에 대비해 컨설팅을 제공하는 교회들도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목사:이영훈)는 수년째 ‘취업박람회’를 열고 청년과 기업을 잇는다. 이 자리에는 수십여 곳의 구인기업과 구청에서 운영하는 직업상담소 등이 부스를 마련해 채용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삼일교회(담임목사:송태근) 역시 해마다 ‘청년 취업 멘토링’을 통해 취준지옥 속 살 길을 터준다. 외부강사를 초청해 5~6명으로 구성된 소그룹 청년들을 밀착 케어해주는 게 강점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크리스천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을 함께 다진다.

교회가 청년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이들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삼일교회 김선민 목사는 “단순히 취업 성공이나 합격에서 나아가 청년들이 일터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과 비전을 발견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며 “교회는 청년들이 삶의 전반에서 ‘신앙’을 잘 지켜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선도할 책무가 있다”고 전했다.

꿈에 날개를 달아주다
62.4%. 구인구직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대학생 3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고민했다’고 답한 비율이다. 졸업 후 취업이라는 공식이 깨진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청년들의 ‘창업’을 도모해 더 넓은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교회들도 있다.

만나교회(담임목사:김병삼)는 2018년부터 ‘믿어줄게 밀어줄게’ 이름의 ‘창업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전문가 멘토링 및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서류·PT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된 팀은 1년간 매달 비용을 지원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만나교회 박의성 목사는 “아이템 선정부터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키기까지 전 과정을 교회가 동행한다”며 “사업장에서 소명을 실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특별히 ‘선교적 비전’과 ‘사회적 가치’를 담은 지원자들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한다. 창업 전선에 먼저 뛰어든 청년들이 수익의 일부를 다시 기부하는 선순환도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교회가 청년들에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덕분에 그동안 6기에 걸쳐 약 10개 팀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꿈을 실현해가고 있다. 올해 발달장애 아동 치료센터인 ‘홈브릿지 ABA(응용행동분석) 연구소’를 개소한 신고은 청년도 그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기업 대표부터 교수·세무사·변호사 등으로 이뤄진 멘토들 덕분에 사업계획서 작성과 사업자등록 방법 등 창업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습득했다는 신고은 씨는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해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까지 고민하면서 크리스천 CEO의 소명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편안한 삶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조금은 힘들더라도 일터에 복음의 가치를 녹여내는 ‘사명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는 “막연했던 창업의 기틀을 닦아준 교회에게 고맙다. 받은 은혜에 보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발달장애 아동들을 섬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역의 청년 창업가들을 발굴·육성하고자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둔 곳도 있다. 평촌새중앙교회(담임목사:황덕영)는 지난해 9월 벤처투자전문업체 어번데일벤처스(대표:권혁태)와 손잡고 교회 안에 ‘새중앙 어번데일 로컬센터’를 조성했다.

청년 창업가들에게 무상으로 공간을 대여하는 이곳은 회의실·아이디어룸·라운지 등을 구비한 ‘공유 오피스’다. 종교에 상관없이 우수한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이나 청년 창업가라면 누구든지 대상이며, 하드웨어 중심의 ‘인큐베이팅’ 뿐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수립과 투자유치 등 ‘엑셀러레이팅’ 단계의 창업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센터장 윤은성 목사는 “청년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선뜻 공간을 내어준 평촌새중앙교회 같은 사례가 앞으로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길 바란다”며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일은 곧 교회가 사는 길이다. 청년이 사라지면, 지방도 소멸되고, 교회도 무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다음세대 돌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청년 잇는 가교
한편, 청년들의 미래를 둘러싸고 실업난 못지 않게 중요한 사안은 바로 일할 의지조차 상실한 ‘구직단념자’들이다. 현재 비경제활동인구 중 거듭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구직단념자는 팬데믹 이후 정점을 찍어 37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사회와의 접촉을 피하는 ‘고립·은둔 청년’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통계청은 그 수를 약 54만명으로 내다봤다. 이들을 방치할 경우 막대한 사회적 손실은 물론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청년들의 건설적인 미래 설계를 위한 입체적 지원이 요구된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작년 ‘고립·은둔 청년 종합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정서적 돌봄을 비롯한 다양한 회복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19~34세 고립·은둔 청년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발굴과 전담 지원 체계를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는 구직단념 청년들을 발굴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청년도전지원사업’을 전개한다.

이 가운데 ‘교회’의 ‘동참’이 눈에 띈다. 서울 안암동에 위치한 로뎀나무교회(담임목사:유병용)는 지난해 성북구가 전개한 캠페인 ‘끌어안암’의 일환으로 지역의 고립·은둔 청년 A씨를 발견하고, 교회가 활동 중인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주민센터 등에 연결시켜줬다.

지역사회와 협력한 교회의 관심 덕분에 A씨는 8년간의 나 홀로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로 복귀했다. 소중한 일상을 되찾은 A씨는 현재 사회복지사의 꿈을 품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로뎀나무교회 유병용 담임목사는 “스스로 ‘패배자’라는 생각에 세상을 등진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따뜻한 보살핌”이라며 “교회가 지자체와 힘을 모아 청년들의 고민에 더욱 효과적으로 응답하는 사례가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바랐다.  

김수연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