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셋째 주는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절기다. 어렸을 때 시골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이 오면 아버지는 추수해 방앗간에서 도정한 쌀 2가마니를 교회 강단 앞에 가져다 놓고는 했다. 당시 할머니는 권사였고 어머니는 집사였는데 각종 농산물을 가져다가 강단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이렇게 섬기는 것으로 알고 자라왔다. 도시에서 신앙생활하고 교회를 개척해 세운 이후에도 매년 추수감사절이 되면 강단을 각종 과일로 풍성하게 장식해왔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실천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을 접하고 이를 독자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 추수감사절의 유래
한국의 모든 기독교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저마다 다른 시기에 추수감사절을 지킨다. 한국의 기독교는 왜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날짜를 보면 한국교회가 지키고 있는 11월 셋째 주일의 추수감사절과 11월 넷째 주 목요일의 미국 추수감사절이 시기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추수에 대한 감사이다. 그러나 한국의 추수감사절은 추수에 대한 감사뿐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부흥과 선교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됐다.
1904년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는 선교사들의 입국일을 기점으로 한국 기독교의 발전과 부흥에 감사하는 감사절을 지킬 것을 제안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는 1904년 11월 10일을 ‘선교 감사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에 1914년 조선 장로교 총회는 특정한 날짜(11월 10일)를 지정할 것이 아니라 11월 둘째 주일이 지난 후에, ‘수요일’을 선교 감사일로 지킬 것을 결의했다. 그 후에 수요일에 지키던 선교 감사일은 1921년 조선 장로회와 조선 감리회가 연합 협의회를 열어 추수감사주일로 변경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이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선교감사주일’이 ‘추수감사주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 행정이나 사역이 수요일보다는 주일날 이뤄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추수 감사일은 수요일이 아니라, 11월 셋째 주일로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됐다. 그리고 추수 감사일도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선교에 대한 감사의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강조됐다.
한국의 몇몇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추석 명절이 있는 주간의 주일을 ‘추석감사주일’과 ‘한가위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시기적으로 추수한 것을 감사하는 절기로, 11월 셋째 주는 늦은 감이 있고, 미국 추수감사절의 전통을 따른다는 거부감 때문이었다. 날짜의 문제보다 아쉬운 점은 한국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의 전통이 단순히 한 해의 추수만을 감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부흥과 선교를 위한 감사였다는 사실이 퇴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다가 이천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에 성도들이 쌀을 준비해서 장식하고 추수감사절을 지낸 다음에 이웃들에게 전도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으며 파주의 어느 교회는 “사랑의 온도를 체웁시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성도들에게 알리니 교회 강단에 20kg 쌀이 장식되면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페이스북에 공개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차피 내가 농사짓지도 않은 과일을 사다가 풍성하게 장식하는 것보다 더 좋겠다는 생각과 전도와 선교 정신을 살리면서 추수감사절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한국교회가 이를 실천한다면 전도도 되고 선교에도 좋은 효과가 나타나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