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독여자의사회, 2년째 OCC 프로젝트와 동행
넘치는 마음 눌러 담은 200상자 우크라이나·필리핀에
가장 귀한 선물은 예수님 “크리스마스 의미 깨닫길”
형형색색의 상자를 감싼 화려한 리본을 풀어헤친다. 성탄절 선물 상자를 열어볼 때의 두근거림, 아직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레고 상자나 인형 따위를 들고는 헤벌쭉 웃던 추억은 되려 선물을 주어야 할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도 설렘으로 미소 짓게 한다. 성탄절 선물은 어른이라는 유통기한이 오기 전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어린이’가 특권이 아닌 약점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성탄절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 기쁜 날의 의미조차 듣지 못한 이들에게 성탄절 선물이란 글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국제 구호단체 사마리안퍼스는 아이들에게 어린이라는 특권을 돌려준다. 전 세계 크리스천들이 마음을 모아 직접 정성껏 포장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번도 선물상자를 구경하지 못한 저개발국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 ‘Operation Christmas Child(OCC) 박스’라고 이름 붙인 선물 보내기 프로젝트로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성탄의 기쁨과 선물의 설렘, 그리고 가장 귀한 복음의 비밀을 전하고 있다.
3년 전 한국으로 들어온 사마리안퍼스코리아(대표:크리스 위크스)도 한국교회 성도들과 손을 맞잡고 OCC 선물상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대한기독여자의사회도 지난해부터 2년째 OCC 프로젝트와 동행하며 사랑을 담고 있다. 지난달 5일 선물상자를 포장하느라 분주한 OCC 선물상자 패킹파티 현장을 찾았다.
상자에 담긴 ‘가장 위대한 선물’
아직 어느 거리에도 캐럴이 울리지 않던 지난달 초. 때 이른 크리스마스 풍경이 서울 성동구 꽃재교회에서 펼쳐졌다. 누가 보아도 크리스마스를 떠올릴 진한 초록과 빨강으로 수놓아진 상자,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선물들이 꽃재교회 식당 테이블 위에 가득 진열됐다.
식당 문을 열자 패킹파티를 위해 모인 대한기독여자의사회 회원들이 박스를 조립하는데 한창이었다. 일터에서라면 병원장님, 박사님, 의사선생님으로 불릴 엘리트지만 앞치마를 둘러맨 이들의 모습은 교회에서 마주쳤던 낯익은 권사님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춰 입은 이날의 빨간 앞치마는 그 어느 백색 가운보다 빛나보였다.
패킹의 시작은 선물을 담은 박스를 만드는 것에서부터다. 이미 지난해 OCC 박스 포장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터라 회원들은 정교한 훈련을 받은 군대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누가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자기의 자리를 찾아 소매를 걷어 붙였다. 은근히 까다로운 박스 조립에서도 익숙한 손놀림이 돋보인다.
OCC 선물상자의 의미를 우리말로 하면 ‘복음을 전하는 성탄 선물상자’다. 독특한 점은 후원자들이 단순히 돈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른 물건들로 상자를 채운다는 것. 박스에 선물상자의 대상으로 생각한 아이의 성별과 나이대를 적어 놓으면 사마리안퍼스가 적절한 국가와 아이를 골라 OCC 박스를 전달한다. 대상은 주로 살면서 한 번도 성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그저 선물상자를 나눠주는 것에서 OCC 프로젝트의 의미는 끝나지 않는다. 선물을 전달받은 아이들은 현지 교회를 통해 12주 간의 제자양육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가장 위대한 여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제자양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복음을 듣고 성탄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1993년부터 시작된 OCC 사역을 통해 지금까지 160개가 넘는 국가에서 약 1억9천800만 명의 어린이들이 선물상자를 받고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
사마리안퍼스 김현수 본부장은 “사마리안퍼스코리아가 시작되고 첫해인 2020년엔 3천개, 작년엔 1만개를 몽골과 가봉으로 보냈다. 올해는 약 3만5천개의 선물상자가 전해질 예정”이라면서 “패킹파티는 사마리안퍼스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포장하는 단체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도움만 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마음을 담아 “Jesus Loves you!”
올해 패킹파티를 위해 참석한 회원들은 30여 명. 지난해 15명이 함께한 것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었다. 행사에 참여했던 회원들이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전해주고 복음을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나누면서부터다. 그에 맞춰 선물 상자도 지난해 100상자에 비해 두 배 늘린 200상자를 준비했다. 지난해 선물은 몽골 아이들에게 전해졌다면 올해 선물은 전쟁의 상처를 겪은 우크라이나와 필리핀의 아이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박스 조립을 마쳤다면 이제 선물을 가득 채울 차례. 박스의 바닥에는 선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엽서가 놓이게 된다.
“안녕! 친구야! 조그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너에게 보낸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란다. 예수님이 너와 함께 하셔서 밝고, 건강하고, 큰 꿈을 가지고 잘 자라기를 기도할게요. Jesus Loves you, So do I!”
비록 번역된 그 나라의 언어로 편지를 이해하게 된다 해도 선물을 받게 될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한자 한자 정성을 들여 눌러 쓴다.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이를 생각하면 200개나 되는 편지를 모두 손수 쓰는데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테이블에는 아이들이 받을 선물이 산처럼 쌓여있다. 남자 아이를 위한 선물은 사인펜, 양말, 축구공, 공기주입펌프, 여자 아이를 위한 선물은 머리핀, 리본, 머리끈, 스카프로 구성됐고 성별을 가리지 않는 노트, 연필깎이, 사인펜, 양말, 신발, 인형, 티셔츠는 양쪽 모두에 준비됐다.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선물을 너무 많이 준비한 터라 모든 선물을 담자면 박스가 찢어질 지경. 신발 안쪽 빈 공간에 인형과 양말을 구겨 넣는 등 온갖 포장의 기술이 동원된다. 패킹파티를 돕기 위해 온 사마리안퍼스 직원들이 “남자 아이들이 축구공을 정말 좋아하니 꼭 넣어주세요”라고 넌지시 팁을 주자 기독여자의사회 회원들은 “다음부턴 박스를 훨씬 큰 걸로 준비해달라”며 화답한다. 하지만 아무리 큰 박스가 준비돼도 아이들을 생각하는 성도들의 마음은 모두 담지 못한다.
기독여자의사회 김윤자 회장은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풍성하게 선물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어떤 걸 받으면 가장 좋아할까를 생각하며 준비할 때부터 설렘이 넘쳤다”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의미를, 또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선물상자를 통해 꼭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편, 대한기독여자의사회는 캐나다장로회 소속 의료선교사이자 여성이었던 플로렌스 머레이 선교사에 의해 1948년 설립됐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활동을 시작해 7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단체다.
전 회장을 맡았던 산부인과 의사 오혜숙 원장은 “친목도 하고 여러 가지 사역을 하지만 무엇보다 선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의사는 육의 생명을 살리지만 크리스천 의사는 영의 생명도 살려야 한다”면서 “우리의 작은 선물이 그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알게 되면 그 아이의 일생이 행복해지는 일이다. 땅 끝까지 가서 증인된 삶을 살라고 하셨는데 외국에 나가기 힘든 코로나 상황에도 선물상자가 대신 땅 끝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