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차를 마심으로써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왔다. 조선시대 차인들이 검소한 생활을 실천한 것도 이런 이유다. 검소한 생활이란 사치하거나 풍족하게 생활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가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풍족한 생활을 할 능력이 있지만 스스로 절제하는 것을 말한다. 화려함보다는 검소함을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선호한다.
차를 마실 때 나오는 다식은 간단하다. 주위에서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또 손님을 간소하게 대접할 때는 차만 있으면 결례가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아마 이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난한 백성들의 생활을 함께 동참하고자 하는 선비들의 따뜻한 마음도 작용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한다.
우리나라 차인 중 서거중이 이러한 마음을 지닌 대표적 인물일 것이다. 그는 대사헌을 두 번 역임했고 육조의 판서를 두루 지냈으며 45년간 조정의 높은 벼슬을 하였음에도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40년간 초가집에서 살았으며 지붕에 구멍이 났는데도 한가로이 글을 쓰며 차를 마셨다고 한다. 그는 궁핍한 생활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고 혼자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일을 오히려 즐거워했다.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들의 삶이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하게 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 땅의 이방인들이기 때문이다.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이자 유목민인 우리의 정체성이다. 가끔씩 TV에서 보는 유목민의 생활은 지루할 정도로 단순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떠나야 하기 때문에 늘 휴대하기에 간편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거추장스러운 물건은 오히려 불편을 초래할 뿐이다.
흔히들 예수를 믿고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묻는 경우가 있다. 그 말뜻에는 세상에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을 하지 않고 어디서 낙을 즐기느냐는 의미이다. 우리가 몽고와 같은 유목민들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듯 그들 역시 크리스천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세상적인 것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나 그것은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잠시 스쳤다가 꺼지고 마는 거품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 맛은 먹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수이다.
차생활은 번거롭거나 힘들지 않다. 장마와 무더위로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힘들고 지친 가족을 위해 말차콩국수와 아이들의 건강식인 말차복숭아퓨레로 간단한 여름 보양식을 준비하여 코로나를 이겨내자.
한서대학교
서은주 교수의 웰빙과 차(茶) 이야기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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