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황을 판단할 때 자신이 배운 대로, 살아 온 대로 생각할 때가 많다. 이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새의 소리를 듣고 누구는 새가 운다고 말하고 누구는 새가 노래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따져 보지도 않고 그냥 해온 대로 익숙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바로 다르게 보는 것이다. 광야라는 곳이 그렇다. 광야는 항상 힘든 곳이라고만 알아 왔기에 그 생각만 한다. 광야는 그럴 것이야.... 그런데 뒤집어 보면 광야가 다른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다. 물론 광야는 힘든 곳이다. 뜨거움, 추위, 위험, 걱정, 기본적인 삶조차 보장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광야에도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나? 그럴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광야를 갈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광야는 그 힘든 것 때문에 특별한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는 장소가 된다.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먹을 것, 마실 물, 입을 옷, 건강, 어느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이 하셨다. 이것이 광야에서만 있는 특별한 기적이다.
그러기에 광야에는 항상 두 얼굴이 있다. 그런데 믿음이 없으면 한 쪽만 보는 것이다. 그것도 나쁜 쪽만 크게 보는 것이 문제다. 그 고난의 광야가 없으면 가나안도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잘 되어야만, 응답이 있어야만, 치료 되어야만 복이라는 생각하고 응답 없으면, 실패하면, 어려우면 복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런 고정관념으로 인해 진짜 하나님의 뜻과 복을 놓치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가장 나쁜 것을 가지고도 가장 좋은 것을 만드시는 분이시다.
소금은 두 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 sodium(소디움), chloride(클로라이드)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원소를 각각 먹으면 죽는다. 둘 다 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 원소가 합쳐지면 아주 중요한 조미료가 되는 것이다. 아픔의 반복, 고난의 연속이 너무 힘들어서 내 삶의 독소로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
이 아픔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기도했을까?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내가 변화될 수 있었을까? 그 실패가 아니었으면 십자가 붙잡았을까? 그 고난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면 이것은 더 큰 은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뒤집어 보면 결국은 그 고난이 나에게 최상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제 광야의 한 복판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계속 가나안으로 가자.
광야에서 만나는 낮의 뜨거움이 구름기둥으로 가려지고 밤의 차가움이 불기둥으로 비쳐지는 은혜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멀리 보고 앞으로 나가자. 울지 않고는, 가슴을 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상황이라도 힘을 내야 한다. 메마른 광야에서 흘리는 우리의 눈물은 광야에 샘의 골짜기를 만들 것이고 그 눈물 끝에는 예쁜 무지개가 있을 것이다. 광야가 끝이 아니다. 가나안이 끝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까지 가야 한다. 광야가 은혜로 보일 때까지 뒤집어 보자.
임병재 목사 / 엘드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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