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기복신앙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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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복신앙의 한계
  • 승인 2008.07.0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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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祈:빌 기, 福:복 복)신앙이란 중요한 것을 구하지 않고 덜 중요한 것을 더 추구하는 신앙행위를 지칭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소유하려는 마음은 별로 없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복만을 더 소유하려는 신앙행위를 뜻한다.

바울은 로마서 8:31-32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한다.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아들’(예수 그리스도)은 구하지 않고 아들이 주시는 ‘모든 것’만을 구한다. 그런데 기복신앙을 가진 자들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데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모든 것’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먹고 살 것만을 추구하고 물질을 구하며, 혹은 사업이 잘 되기만을 구하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가기를 구하고, 만사형통하기만을 구한다.

첫째, 기복(祈福) 신앙은 기복(起伏)이 심하다. 감정에 기복(起伏)이 심하고 행동에도 기복(起伏)이 심하며 교회 출석이나 교회 봉사에도 기복(起伏)이 심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복들을 받으면 활력을 얻고, 그런 복들을 받지 못하면 소침하여 견딜 수 없어 한다. 기복신앙을 가진자들은 그런 신앙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본인도 힘들고 다른 성도들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루 빨리 주님 자신을 구하는 신앙으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굴곡이 심한 신앙의 걸음을 걸을 것이 아니라 항상 안정된 신앙의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둘째, 기복신앙은 감사가 별로 없다. 복이 올 때는 감사하나 복이 없으면 기분도 우울하고 행동도 우둔하며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다(살전 5:18).

하박국은 3:17-19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어도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셋째, 기복신앙은 극심한 환난을 당하면 신앙생활을 포기한다. 과거 공산주의 탄압 아래에서 많은 사람이 신앙에서 물러갔다. 이유는 환난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환난은 여러 가지 다른 복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신앙의 눈을 넓혀야 한다. 로마서 5:3-4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한다. 이제 기복 신앙으로부터 환난을 당하는 신앙으로 들어가서 많은 복을 더 받아야 할 것이다.

넷째, 기복(祈福) 신앙은 복을 받는데 한계가 있다. 기복 신앙인들은 자기들이 큰 복을 받는 줄 착각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참 복을 많이 놓치고 세상을 사는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놓치고 산다. 기복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손에서 떨어지는 복보다는 그리스도 자신이 더 중요한 줄 알고 그리스도를 구해야 한다. 빌립보서 3:7-11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한다. 기복 신앙인들은 그리스도 알기를 제일 소원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기복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얻기’를 소원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복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더욱 소유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소유하고 땅 투기를 하며 많은 아파트를 소유하고 다른 부동산을 소유하는 일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처럼 그런 것들을 쓰레기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더욱 소유하려는 소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기복 신앙의 한계를 벗어나 주님을 구하는 신앙으로 옮겨야 한다.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기뻐하며 소망 중에 사는 그런 신앙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받아들인지 120년이 되었다면 우리도 성숙한 신앙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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