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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에발산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수 8:30).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에서만 번제를 드리라 하셨습니다(신 12:12~14). 이것은 서로 마찰되는 것이 아닙니까?
예루살렘에 솔로몬의 전이 세워지기 전에 대개 높은 곳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규탄의 대상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 하나님이 택한 곳에서만 번제를 드리도록 명하신 것입니다(신 12:2~14). 실제로 예배 처소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는 가나안 정복 때부터 솔로몬 성전시까지 길갈에서 실로로, 그리고 기브온으로 변경되었고 그곳은 장막과 번제단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어 헌당된 후 모든 희생제물은 성전에서만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후기에 와서는 그의 우상숭배하는 외국인 아내들의 영향으로 높은 언덕 위에 산당을 짓고 모압의 가증한 신 그모스와 암몬의 신 밀곰(왕상 11:5~7), 그리고 다른 이방신들을 섬기게 했습니다.
이와같은 악한 일을 막기 위해 신명기 12:2~14에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여호와께서 택한 곳에서만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언덕 위의 산당들은 여로보암이 세운 북왕국은 물론 남유다에도 세어졌습니다.
아사왕 때 남유다의 산당들은 파괴되었으나(대하 14:3) 완전히 멸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산당들은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처소가 되었고, 그러나 신명기 12장의 택하신 예비장소 규례에는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것을 책망하였습니다.
열왕기하 23:8에 의하면 이 산당에서 제사장들이 분향했으나 신명기 13장의 규례대로 죽임을 받아야 할 그들을 죽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시에 그들은 살게 되었고 오히려 아론의 제사직을 돕기 위한 음식물 바치는 일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출입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에발산의 여호수아의 제단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회개와 갱신을 위한 것으로 출애굽기 20:24~25에서 선포된 제단법대로 쌓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솔로몬 성전 이후에도 북왕국에는 국가적 위기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으로 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단에 불이 임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 되시고 이세벨의 선지자들이 섬긴 바알은 거짓 신으로 드러난 것(왕상 18:30~39)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8:30과 신명기 12:12~14 의 말씀은 상호 마찰이 없는 보완관계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