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죽음으로 내모는 ‘조력 존엄사’…호스피스 완화의료 강화해야”

■존엄사법 관련 법안 발의, 논쟁 재점화

2025-03-17     정하라 기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 ‘존엄사’ 82% 찬성
존엄사 이유 통증보다 심리‧정서적 이유 높아
인간 존엄성 훼손과 생명경시 풍조 확산 우려

지난해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조현재 씨(가명)의 어머니는 뼈와 장기 곳곳에 암이 전이되면서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로지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최근 딸의 도움을 받아 외국인에게도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 스위스의 조력사망 기관 ‘디그니타스(Dignitas)’에 찾아 안락사 절차를 밟았다.

말기암 환자의 고통 경감을 위해서라면 안락사의 정당성을 용인할 수 있을까.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의 죽음을 돕는 ‘조력 존엄사’가 인도적 선택이라는 주장과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길 위험이 크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도 조력 사망(존엄사)을 선택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따르면, 성인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조력 존엄사’의 합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이유로는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하다’(41.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죽음을 결정한 권리가 있기 때문’(27.3%), ‘죽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19.0%)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높은 찬성률은 ‘존엄사’에 대한 미화된 이미지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존엄사라는 용어 자체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합법화가 야기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22대 국회에서도 ‘조력 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이 다시 발의되면서 ‘존엄사’에 대한 명확한 윤리적‧법적 논의가 요청되고 있다.

최근

“조력 존엄사, 의사의 도움 받는 자살과 같아”

말기 환자의 삶의 질을 고려할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조력 존엄사’를 대안으로 삼는 것은 인간이 생명을 자의적으로 종결시키려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증 경감과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 호스피스 완화치료가 충분히 제공된다면, 품위있는 임종의 과정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성루카병원 호스피스병동 정극규 원장은 “‘존엄사’ 혹은 ‘조력 존엄사’는 사실상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자살’에 해당한다. 고통을 참지 못해 의사가 준 약을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과연 존엄한 죽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그는 “많은 사람이 ‘조력 존엄사’를 선택하는 이유가 질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통증보다 자율성 상실과 삶에 대한 흥미 상실 같은 심리적‧사회적 요인이 더욱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97년 ‘존엄사법’이 통과된 미국 오리건주 보건국의 [2022년 사망 존엄사법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들이 ‘조력 존엄사’를 택한 가장 큰 이유가 △자율성 상실(90.9%) △삶의 즐거움 상실(90.9%) △존엄성 상실(67.5%) △신체기능 상실(56.4%)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통증에 대한 두려움은 26.3%에 불과했다. 이는 말기 환자들이 극심한 신체적 고통으로 존엄사를 택하기보다 자율성과 삶의 질 저하 등의 정신적‧심리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 원장은 “통증은 눈에 보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조력 존엄사를 고통 경감을 위한 선택으로만 보는 것은 존엄사를 미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적극적인 완화치료를 제공하면 환자의 신체적 고통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며, “말기 환자의 통증은 적절한 진통제 투여로 조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호스피스 병원에 갓 들어온 환자들은 죽을 것과 같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통증은 의료용 마약으로 대부분 관리할 수 있다. 실제로 말기 암 환자의 극심한 통증 관리를 위해 의료진은 모르핀을 비롯해 펜타닐, 옥시코돈 같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다. 이러한 진통제는 ‘천정효과’가 없어 용량을 증가시키면 진통 효과 역시 계속 증가한다는 것.

존엄사 허용 서구국가…인권침해 부작용까지

현재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호주 일부 지역 등이다. 그러나 안락사를 허용한 국가들이, 허용 범위를 점차 확대하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벨기에는 2014년 미성년자 안락사를 허용한 이후, 12세 미만 아동까지 안락사 대상에 포함하는 법 개정을 단행했다. 스위스에서는 외국인도 조력 사망을 선택할 수 있어, 이른바 ‘죽음을 위한 여행’이 증가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1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이후, 매년 안락사 건수가 증가해 2019년 6,361건에 달했다. 현재는 정신질환자, 치매 환자까지 안락사 대상에 포함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더욱이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 시행 사례 중 10%가 환자 본인의 명확한 동의 없이 진행된 것으로 밝혀져 윤리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독교 윤리학계에서는 ‘존엄사법’이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킬 위험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상원 박사(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는 “안락사는 고통 완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결국 살인 또는 살인 방조에 해당한다”며, “의술의 목적이 생명 증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죽어가는 과정에 개입해 생명의 종결을 앞당기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환자와

환자의 품격있는 임종 위한 ‘호스피스 병동’

환자와 가족이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존엄사법 논의보다 호스피스 제도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을 통해 임종기 환자가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되었지만, 호스피스 이용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정극규 원장은 “현재 환자들이 호스피스에 오면 평균 생존 기간은 2~3주에 불과하다. 3차 병원에서 치료 중심의 의료행위를 받고 통증에 시달리다가 대안이 없을 때 호스피스로 환자들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스피스는 단순한 통증 관리뿐 아니라 환자가 마지막 순간을 의미있게 정리하도록 돕는 기관”이라고 소개했다.

정 원장은 “신체적 문제로 자율성을 갖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매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하루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한 인간으로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호스피스 제도”라고 밝혔다.

생의 말기, 3차 병원의 중환자실 입퇴원을 반복하게 만드는 의료경험은 환자와 유가족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자극한다. 호스피스 병동을 임종의 준비의 장소로 여기고 이용 시점이 늦어지는 것도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매년 600명에 가까운 환자의 임종을 경험하고 있는 그는 “너무 늦게 호스피스를 찾지 않는다면 오히려 삶의 마지막을 의미있게 보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며 “적극적 항암치료가 끝난 환자들에겐 가정형 호스피스 연계를 해주록 말기 환자 치료 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 제도의 법적 보완도 요청된다. 2016년 호스피스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건강보험 혜택은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이용 가능 질환(암‧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만성호흡부전‧만성간경화)은 제한돼 있으며 여전히 치매, 파킨슨병 등 비암성 질환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말기 환자가 육체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하더라도 이는 고통의 완전한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상원 박사는 “고통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지켜야 한다”며, “믿음으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박사는 “교회와 기독교인은 환자를 방문해 죽음과 함께 인간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들어가는 축복된 관문임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