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부흥의 길] 설교는 이성의 설득을 넘어 의지의 결단까지 이끌어내야
권성수 목사와 함께 찾는 ‘한국교회 회복과 부흥의 길’ (32) 신설교학 분석
신설교학은 구설교학과 핵심과 목표와 방향이 다르다. 신설교학을 구설교학과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구설교학은 성경진리의 고정의미를 강조하지만 신설교학은 체험 중심의 유동의미에 문을 연다. 구설교학은 설교자의 권위 있는 선포를 강조하지만, 신설교학은 청중과의 민주적인 대화를 강조한다. 구설교학은 논증(설명 예증)으로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명시적으로 적용하지만, 신설교학은 이야기로 서술하면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고 적용은 모호하게 남겨 둔다.
구설교학은 본문을 해석해서 의미를 파악하고 명제를 밝히는 설교를 하지만, 신설교학은 본문의 장르를 살리면서 본문 내용을 이야기로 전개한다. 구설교학은 선명한 결론을 가지고 주로 3대지로 전개하되 요점을 전달하지만, 신설교학은 기승전결로 흘러가면서 귀납적인 설교를 한다. 구설교학은 강단을 중심으로 고정된 정적 설교를 하지만, 신설교학은 원형 테이블에서 청중과 대화하는 유동적인 동적 설교를 한다.
신설교학은 신해석학(new hermen
eutic)에 정초하고 있다. 전통적인 해석학은 저자의 의도(author’s intention)를 강조하지만 신해석학은 독자의 반응(reader response)을 강조한다. 신설교학은 신해석학의 독자의 반응을 청중의 반응으로 바꾼 것뿐이다.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해석자와 본문 사이의 순환성(circularity)을 지적했다. 해석자가 본문을 접근할 때 자기 나름의 전제를 가지고 접근해서 결국 그 전제와 연결된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한스-게오르그 가다머(Hans-George Gadamer)는 “편견에 대한 편견”(prejudice against prejudice)을 거절했다. 편견은 잘못된 것이라는 편견을 거절하면서 전제적 편견에 근거한 해석을 정당화했다. 가다머는 성경과 현실의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설교학에 근거를 제공한 신해석학은 후현대주의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후현대주의는 객관적인 기준을 거부하고 각자의 주관적인 반응을 정당화한다. 현대주의가 이성에 근거한다면, 후현대주의는 감성에 근거한다. 신해석학은 독자/청중의 반응을 강조하는 후현대주의가 신설교학으로 가는 길목을 제공했다.
각자의 감성적 반응을 중시하는 후현대주의가 독자의 반응을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 신해석학을 거쳐 청중의 반응을 강조하는 신설교학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신설교학은 결국 요즈음 유행하는 후현대주의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 본문의 권위보다는 청중의 반응에 포인트를 맞추는 신설교.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살리면서도 청중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설교를 해야 한다. 이성의 설득만이 아니라 감성의 감동과 의지의 결단까지 포괄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대구동신교회 원로목사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