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눈물의 역사 한국교회 140년 … 열두 개의 돌로 기억되리”

지난 26일 제4차 로잔대회 중 ‘한국교회의 밤’ 가져 한국교회 역사 상징하는 12개 오브제 공연과 영상으로

2024-10-02     한현구 기자

겹경사가 터졌다. 제4차 서울-인천 로잔대회가 열린 올해는 로잔운동이 50주년을 맞은 해이자 한국 기독교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은 해다. 대회의 호스트를 맡아 단순히 장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재정과 봉사, 그리고 뜨거운 기도로 헌신한 한국교회를 위해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대회 닷새째인 지난 26일 저녁 진행된 ‘한국교회의 밤’에서는 140년에 걸친 한국교회의 역사를 12가지의 상징적인 오브제로 표현하며 ‘한국교회의 열두 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후대에 길이 알리기 위해 세웠던 열두개의 돌에서 착안한 주제다.

길선주 목사가 자신의 몸을 묶었던 ‘밧줄’로부터 그 후예인 한국 선교사의 손에서 탄생한 ‘왐본 부족 성경’에 이르기까지. 수준 높은 뮤지컬 공연과 다큐 영상으로 한국교회를 전 세계에 소개한 ‘한국교회의 밤’ 현장으로 들어가 봤다.

#1 밧줄 : 대부흥의 시작점

무대는 1907년 1월 장대현교회의 사경회 현장으로 관중들을 데려간다. 흰 옷을 입은 조선인 성도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길선주 목사가 밧줄로 자기 몸을 묶고 강단 앞에 선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성도들을 향해 길 목사는 외친다. “여러분, 이게 죄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죄에 묶여 있습니다!”몸이 뒤틀리고 신음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박을 풀 수 없다. 인간의 노력으론 죄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음을 두 눈으로 목도한 순간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평양 대부흥 운동’의 시작이었다.

#2 예수성교젼서 : 최초의 한글 성경

놀랍게도 조선인들은 한반도에서 선교 활동이 허락되기 전부터 한글로 번역된 신약성경을 갖고 있었다. 중국 만주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존 로스가 서상륜 등 조선인의 도움을 받아 1887년 출간한 ‘예수셩교젼셔’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중국 만주땅을 오가던 상인들은 비록 조선 사회에서 멸시받는 계급이었지만 복음을 통해 받은 축복을 조선인들과 나누기를 간절히 원했다. 성경 번역에 도움을 준 서상륜은 자신의 사재를 들여 고향인 황해도 소래 마을에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이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다.

#3 막사발 : 질그릇에 담긴 복음

보잘것없어 보이는 평범한 그릇 하나에 조명이 집중된다. 이 그릇은 ‘막사발’이라 불리는 조선의 토기 그릇으로 당시 서민들이 밥을 먹는데 사용한 물건이었다.

조선에 온 선교사 아펜젤러는 당시 한국 사람들을 흔하게 사용되던 막사발에 비유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등장하는 질그릇의 비유를 소개하며 복음의 놀라운 비밀이 막사발과 같은 평범한 그릇, 한국인들에 담겨 세상에 전해지기를 꿈꿨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복음은 뿌리를 뻗는 식물처럼 한반도 곳곳에 퍼졌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랐다.

#4 태극기 :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태극기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이 당당한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비폭력 시위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당시 기독교 인구는 2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했다. 하지만 3.1운동을 이끈 33명의 민족지도자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체포된 사람 중 20%가 기독교인이었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교회는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교회로 인해 마을과 시장에서 독립 선언서가 뿌려졌다.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유관순은 이화여자학교에 다니던 16살의 학생이었다. 그는 손으로 필사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들고 다니다 체포돼 투옥됐다. 유관순 열사는 감옥에 있는 순간에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결국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5 감사헌금 봉투 : “원수를 사랑하라”

1940년대 후반, 갈등이 한반도 전역으로 번지며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이 공산당 청년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자신의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내 두 아들의 순교에 감사하며, 10,000원, 손양원’이라고 쓴 감사헌금 봉투를 교회에 드렸다.

후에 그의 아들을 죽였던 좌익 청년이 재판을 받고 사형을 앞두고 있을 때, 이를 막고 목숨을 구해줄 것을 간청한 것도 손 목사였다. 나아가 손 목사는 자신의 아들을 죽였던 바로 그 청년을 아들로 입양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환자들 곁에 머물렀던 손양원 목사는 결국 북한 군인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

#6 태반 항아리 : 전남 기독교의 산파

이름도 낯선 이 물건은 전라남도 122개 섬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한 전도자 문준경 전도사의 것이다. 그는 말씀을 전하며 가난한 섬 주민들과 삶을 나눴고 그들과 함께 살며 웃고 울었다. 헌신적으로 주민들을 섬겼던 문 전도사는 산파 역할까지 감당하며 이웃의 삶에 깊이 스며들었다. 태반 항아리는 바로 그때 사용된 물건이다.

지금은 깨진 형태로 남아있는 진흙 항아리는 문준경 전도사가 얼마나 희생적인 삶을 살아왔는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헌신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복음을 알았고 1,004개의 섬에 100여 개의 교회가 설립됐다. 지금도 이 지역은 한국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제일 높은 곳으로 꼽힌다.

#7 천막 : 폐허 속에도 십자가 붙들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서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빈곤과 추위를 달랬다. 멍하니 공허를 응시하던 와중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나 가느다란 나무가지를 땅에 박기 시작했다. 깨진 돌과 잔해로 허름한 벽을 쌓았고 그 위에 방수포를 덮었다. 그런 다음 그는 십자가를 그곳에 걸었다. 갈 곳 없는 전쟁고아와 과부, 난민들이 이곳을 찾았다.

전쟁의 여파는 끔찍했다. 수많은 목숨이 희생됐고 보금자리는 잿더미로 변했다.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향한 북한 난민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런데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크리스천들은 어디를 가든 천막 교회를 짓고 십자가 아래 모였다.

#8 구호 : 민족을 그리스도께로

1965년, 아직 전쟁의 상흔이 미처 가시지 않았을 그때 전국 복음화 운동이 시작됐다. ‘3천만을 그리스도께로’라는 슬로건을 내건 집회는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회개 운동과 연결된 집회는 교파를 초월해 한국교회를 통합하고 분열의 상처를 치유했다.

1966년 베를린 세계 복음화 대회에서 빌리 그레함 목사를 만난 조종남 박사와 한경직 목사는 그를 한국으로 초대했다. 구호는 ‘5천만을 그리스도께로’로 확대됐고 여의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440만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그 중 10만명이 회심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9 깃발 : 캠퍼스 선교의 기수

CCC와 IVF, JOY, UBF를 비롯한 학생선교운동 단체들의 깃발이 무대 위에 들어선다. 1974년 로잔대회에서 발표된 로잔언약은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 등대 역할을 했다. 복음이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계 모든 열방을 위한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로잔대회의 영향으로 캠퍼스 전도 운동이 시작됐다. 캠퍼스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에 자신을 드리기로 헌신한 젊은이들이 일어났다. 동시에 선교 헌신 운동에 불이 붙었다. 그 결과 2013년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됐다.

#10 쪽복음 : 지하교회 성도의 눈물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땅끝’을 대표하는 나라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는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몰래 들여와 지하교회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신앙을 키우고 있다. 몰래 숨겨온 이 성경은 북한에서 ‘쪽복음’이라 불린다.

오픈도어선교회에 따르면 북한 지하교회 성도의 수는 5만명에서 8만명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지금도 고문과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키고 있다. 손으로 쓴 전도지를 읽으며 북한 부흥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있다.

#11 로잔대회 : 세계로 넓어진 시야

1974년 제1차 로잔대회가 열리고 10년 후인 1984년, 한국 기독교 선교는 100주년을 기념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1980년대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선지자로 봉사하지 못한 죄를 고백하며 회개했다.

로잔대회를 통해 영향을 받은 어떤 이들은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파했고 다른 어떤 이는 지역 사회의 필요를 섬기기 위해 헌신했다. 복음주의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할 수 없다는 로잔운동의 정신은 한국교회의 방향을 바꿨다.

#12 왐본 부족 성경 : 선교의 빚을 갚다

2023년 말 현재 한국교회는 전 세계 174개국에 21,917명의 장기 선교사를 파송한 것으로 집계된다. ‘왐본 부족 성경’은 한국 선교사들의 활약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한국교회는 이 땅의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헌신했던 푸른 눈의 선교사들을 기억하며 선교의 배에 올라탔다.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들어오며 한반도에 복음의 빛이 비쳤던 것처럼 아직도 자신들의 언어로 성경을 갖지 못한 부족은 자국어 성경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GBT성경번역선교회에서 파송된 장흥태, 이금숙 선교사는 왐본 부족 성경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교회 개척과 의료 활동, 교육과 일터 사역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