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 해설] 암울한 중에도 소망을 주시는 이스라엘의 예언서

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143) - “슬프다 그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욜 1:15)

2024-08-26     유선명 교수
유선명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대지 The Good Earth>라는 영화에서 메뚜기떼 습격 씬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메뚜기떼의 날개소리와 곡식과 풀잎들이 사라진 휑해진 들판의 모습은 안방에 놓인 저해상도 흑백 TV 화면으로도 농부들의 두려움과 절망감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습니다.

193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Pearl Buck)의 원작소설은 선교사의 딸이었던 저자의 중국 거주 경험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가 평생 애독했고 요약본을 쓰기도 했던 성경의 영향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짧지만 강렬한 요엘서의 예언은 대지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메뚜기떼의 습격을 배경으로 선포됩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팥중이와 느치, 황충이 메뚜기류의 다른 곤충들인지, 유충에서 성충에 이르는 메뚜기의 성장단계를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곤충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정복군처럼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6절) 이들이 휩쓸고 간 땅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7절) 먹을 것이 없어진 대지 위에 백성들의 흐느낌이 들려옵니다. 약혼자의 죽음을 맞은 처녀의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울음입니다. 자신들의 죄에는 울지 않던 이스라엘이 이제야 눈물을 쏟습니다. 메뚜기떼가 훑고 간 밭에는 벌건 흙만이 남고, 소산이 없어지니 소제와 전제도 멎고 제사장도 일이 없어 수심에 잠깁니다. 산물이 사라진 곳에 사람의 즐거움도 메말라버렸습니다.(8~11절) 자연재해가 가져온 암울한 결과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묘사입니다.

인명 손실과 경기침체는 재해의 자연스러운 귀결일지 모르지만, 신앙의 위축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암울한 시기에 신앙의 연단과 교회의 부흥이 일어난 선례도 많습니다. 일제강점기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아득히 보이는 희망의 빛을 붙들었습니다.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며 올려드린 기도는 정치적 해방을 넘어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예언서의 메시지에는 그러한 소망의 불씨가 늘 담겨있습니다. 요엘은 분명 전대미문의 재앙을 전했지만, 철저한 파괴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 절망을 넘어 회복의 소망도 동반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욜 2:12~14)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을 선택해 붙들 수 없고, 그분 앞에 나아가는 예배자는 두려워 떠는 마음과 즐거워 뛰노는 마음을 함께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백석대·구약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