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2024-08-23     서장국 장로
서장국

내가 아는 모 대학 교수님은 자신의 범죄심리학 박사학위논문을 우리 속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를 모체로 하여 썼다고 한다. 당시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 와서야 이 속담의 의미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은 어린 시절의 교육과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로 그 시절의 습관이나 태도가 평생 지속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격언이 성경에도 나와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교육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다만 여기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의 주체가 부모일진대 부모가 먼저 훌륭한 인격과 덕, 그리고 신실한 믿음을 갖는 것이 극히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나를 본받아라’라고 가르칠 수 있을 만한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이를 뒷받침해주듯 어느 교장 선생님이 45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가르침을 전했는데 유독 “나를 본받아라”고 하는 말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다. 부모가 좀 부족해도 참 진리인 성경 말씀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친다면 족히 훌륭한 신앙 인격자로 성장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또 좋은 말씀은 암송하도록 하며 은혜로운 찬송가를 읊조리도록 지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최첨단 AI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이 같은 레트로 신앙교육방식이 더욱 절실하고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TV 혹은 인터넷 매체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상업화 내지는 성인화가 우려스러울 만큼 팽배해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악영향과 부작용은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문화적 세태를 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우리는 매 순간 습관적으로 행동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습관이 뇌에 휴식할 시간을 주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습관을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습관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주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릴 적부터 좋은 신앙적 습관을 심어주어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축복해 주어야겠다.

그러면 어떻게 어린아이들에게 올바르고 좋은 신앙적 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까? 미국 MIT 학자들은 습관의 원리를 밝히고자 쥐가 미로에서 길 찾는 행동을 실험한 적이 있다. 거듭된 미로에서의 쥐의 길 찾기 행동 실험을 통해서 학자들은 뇌의 기저핵이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냈다. 즉, 쥐들이 미로 속을 헤맬 때 뇌의 기저핵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정보를 처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반복된 실험 과정을 통해서 결국에는 쥐들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미로를 신속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내면화하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우리 뇌의 기저핵을 통하여 우리가 습관을 내면화하여 행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부터 말씀과 찬송을 가르치고 익히게 한다면 충분히 이를 습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세상 공부와 좋은 몸을 가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듯이 이제 우리의 자녀들을 어릴 적부터 말씀에 근거하여 가르치고 이를 습관화하도록 힘써야겠다. 우리 생활 속에서 이러한 신앙적 습관을 기르고 실천한다면 선행을 낳게 될 것이고 감사가 넘치는 사회로 변모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