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2024-07-18     운영자
김창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박국 2:4

찬송: 492장

하박국 선지자의 첫 번째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정의가 무너져 악이 넘쳐나는데 왜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십니까?”(1:1~4) 그러자 하나님은 “포악한 갈대아 사람을 통해 심판하신다”였습니다(1:5~11).

두 번째 질문은 “갈대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악하고 포악한 민족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여 심판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였습니다(1:12~2:1). 하나님의 대답은 “그들 역시 심판받아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 잠잠할지어다”였습니다(2:2~20). 

이에 하박국은 하나님이 세상에 넘쳐나는 악에 대해 침묵하시고 방관하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듣고 놀라워하며 잠시나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평했던 자리에서 “이 일이 수년 내에 이루어지기를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기오놋에 맞춰(빠른 노래의 마지막 부분/ 클라이맥스) 찬양합니다. 자기에게 아무 소출이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악인이 의인을 이기고 악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반드시 실행될 것을 믿고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만 바라봅니다.
 

박현욱

가인과 아벨 그리고 비교의식

창세기 4:1~8

찬송: 370장

인류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입니다. 피해자는 친동생 아벨입니다. 동족상잔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가인은 동생을 질투합니다. 아벨과 비교하면서 가인은 불행해집니다. 마침내 자신의 손에 친동생의 피를 묻힙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질투심과 비교의식에서 승리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질투심과 비교의식에 패배합니다. 그로 인해 가인의 인생도 초라해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이러한 질투심과 비교의식 때문에 불행해집니다. 

이삭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입니다. 친형제입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있지만,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에서가 가진 것을 야금야금 뺐습니다. 이들도 가인과 아벨의 길을 걷습니다.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도 친자매입니다. 이들도 서로 비교합니다. 갈등하고 질투합니다.

비교하면 인생이 비참해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 6:6)라고 교훈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에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비교하지 않는 마음 주옵시고, 자족하는 마음 주옵소서.

 

황빈

하나님의 전인격적 사랑

사무엘상 20:1~23

찬송: 401장

사울은 다윗의 목숨을 끊으려 라마 나욧까지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계획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하나님의 영에 압도되어 예언을 하는 것은 물론 아예 옷을 벗고 땅바닥에 눕기까지 했습니다. 

이 일 후에 다윗은 요나단을 찾아가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사울이) 내 생명을 찾느냐”라고 묻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아들인 자신에게 숨길 리 없다 말하지만, 다윗은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라며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현실을 한탄합니다.

여기서 요나단이 다윗에게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이성적 예측(그럴 것이다)이나 감성적 소망(그랬으면 좋겠다)을 뛰어넘는 의지적 결단의 표현(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지정의(지성, 감성, 의지)를 고루 갖춘 전인격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게 하심으로써 표현하셨습니다. 

다윗을 향해 요나단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심에 있어서 개념이나 감정에 머물지 않고 의지적, 그리고 실천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에 우리도 반응하는 신앙들인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십자가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전인격적 사랑에 한없는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우리가 늘 깨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신성훈

두 가지 기쁨의 이유

누가복음 10:17~24

찬송: 420장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영적인 현장은 바로 전도와 선교 현장일 것입니다. 그곳은 구원과 묶임이 교차하는 각축장이기 때문입니다. 구령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70인이 돌아와 기뻐하였을 때 영적 세계의 실체들을 밝히시며 진정한 기쁨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불신앙의 시대에 영적 세계는 의식적으로 광범위하게 부정되고 있지만, 복음의 광명이 어둠의 세계를 드러내고 물리치는 권능은 결코 부정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또한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졌다고 밝히십니다. 제자들에게 항복한 귀신들의 총수(總帥)가 사탄인데 그 사탄이 하늘에서 땅으로 위치 변동이 되어 번개같이 떨어졌으므로 그 수하의 영들도 항복한 것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복음의 승리입니다.

구령의 현장에서 영적 권능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영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일이 합당하고 필요하지만 하나님 자녀의 기쁨은 보다 적극적이고 전인격적이며 더 차원 높은 이유로 갖는 충만한 기쁨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참되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우리 인간적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알고 더 아는 영적 기쁨이 항상 넘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현장에서 경험한 영적 승리의 기쁨을 통하여 보다 근원적이며 진정한 성경적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김영수

다름과 차이를 이루는 삶

레위기 11:44~45

찬송: 420장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요약한다면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는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원어를 살펴보면 주로 사용되는 의미로 ‘구별되다’, ‘순결하다’, ‘깨끗하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고 깨끗한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산다면, ‘거룩하다’의 국어사전 설명처럼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한 삶을 살아갔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구별됨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들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의 기준에도 미흡한 삶을 사는 모습도 참으로 많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다니지 않는 사람이 다름이 무엇인지 그 차이가 선명해질 때 교회는 다시 부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거룩한 행실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세상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름과 차이를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피은혜

보여주는 믿음

창세기 22:1~8

찬송: 545장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순종으로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에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보여주려면 먼저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즉시 순종하는 믿음으로 시험을 잘 통과하시길 축복합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의 입술의 고백으로 나타납니다. 5절 말씀에 “우리가 함께 돌아오리라”고 아브라함은 고백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활신앙’이라고 합니다. 제물로 취하셨다가도 다시 살리시리라는 믿음, 참으로 위대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져가신 것 같지만 더 유익하고 온전하게 돌려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는 ‘여호와 이레’의 믿음이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종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믿음의 고백을 하였고 또 고백한 대로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입술이 늘 믿음을 고백하고, 나아가 삶으로 증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