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르포] “주님 오실 때까지 ‘전도자’ 사명 감당해 후대에 믿음 전수할 것”
■ 사도 바울의 발자취 따른 ‘그리스·튀르키예 성지순례’ (하) 초대교회의 요람에서 이슬람국가로 변모한 튀르키예 히에라폴리스, 에베소, 서머나, 이스탄불 등 돌아보며 백석 농어촌·미자립 교회 목회자들 신앙의 전수 다짐
하루 다섯 번 아잔 소리가 도시 전역에 울렸다. 사도 바울과 믿음의 선진들의 손길이 닿은 곳이지만 지금은 이슬람 국가로 변모한 튀르키예의 현실이다. 개신교는 단 1%도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교회는 자취를 감추었고 모스크와 뾰족하게 솟은 첨탑 미너렛이 온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다.
8박 9일의 성지순례 동안 백석총회 농어촌 및 도시 미자립 교회 목회자 70여명은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였던 튀르키예에서 ‘신앙의 전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늘날 무슬림으로 뒤덮인 광경에 가슴 아파했다.
그리스에서 튀르키예에 이르는 은혜의 여정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동안 목회자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세계 복음화를 이룬 바울에게서 큰 위로와 도전을 얻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폐허가 된 기독교 유적들을 바라보며 믿음의 대가 끊겨버린 책임을 통감했다.
이들은 마지막 행선지 이스탄불에서 다시 한번 ‘구원’의 복이 임하길 간절히 중보했다. 세상적으로는 동서고금을 품은 화려한 땅이나 영적으로는 황폐화된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백석의 목회자들은 이 시대 사도 바울이 되어 사도행전 29장을 계속 써 내려가길 다짐했다.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한
국제 도시 히에라폴리스
지난달 15일 바울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리스에서 튀르키예로 국경을 넘어온 백석 성지순례단의 5일째 아침이 밝았다. 분초를 아껴 한 곳이라도 더 눈에 담고자 목회자들은 이날도 이른 오전 6시부터 채비를 서둘러 고대 유적지 ‘히에라폴리스’로 향했다.
데니즐리에 위치한 이곳은 멋진 자연경관으로 정평이 난 튀르키예 대표 관광명소로 꼽힌다. 그리스어로 ‘거룩하고 성스러운 도시’란 뜻의 히에라폴리스는 이름만큼 화려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2천년의 세월을 버틴 유적들이 완만한 언덕을 따라 드넓게 펼쳐졌다.
길을 오르자 신전의 잔해와 주택, 관청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들이 구릉의 사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에서 당시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들이 함께 살던 ‘국제도시’로서의 위용이 엿보였다.
이 중 제일 보존이 잘 된 곳은 최대 1만 5천명을 수용한 원형극장이었다. 넓고 비옥한 땅을 소유한 히에라폴리스의 지형적 특성, 그리고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영위했을 주민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히에라폴리스의 물질적 풍요를 가늠했다.
이 자리에서 히에라폴리스의 성경적 배경을 살핀 백석총회 부총회장 이규환 목사는 “이곳은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골로새 출신 에바브라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주후 87년에는 사도 빌립이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히에라폴리스에는 사도 빌립의 순교를 기념하는 교회가 남아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러 전도여행을 떠난 이들에게 히에라폴리스는 무척 매력적인 곳이었으리라. 각국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국제도시는 이방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최고의 무대인 까닭이다.
원형극장에 빙 둘러앉은 목회자들은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세속적인 도시에서 기죽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그리고 끝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는 잔인한 방법으로 순교를 당한 사도 빌립을 떠올렸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내려와 이번에는 히에라폴리스 바로 옆에 붙어있는 ‘파묵칼레’로 걸음을 옮겼다. 파묵칼레는 석회질의 온천이 절벽을 타고 흘러내려 목화처럼 하얗게 계단식으로 조성된 온천을 뜻한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유난히 푸른빛을 띤 온천에서 목회자들은 쉼을 청했다. 미지근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자 노곤했던 피로가 순식간에 날라갔다. 파묵칼레 온천수는 특별히 유황, 철, 마그네슘 등 성분이 함유돼 치유 효과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성지순례는커녕 단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보지 못한 목회자들의 입술에서는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왔다. 사실 성지순례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꿈이지만, 어려운 형편의 작은교회 목회자들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 이천 전원교회 정문기 목사는 “이번 성지순례를 계기로 영육간 새 힘을 얻고 돌아간다”며 “전국 각처에서 묵묵히 사역하는 우리 목회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섬겨준 백석총회가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전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기적
핍박에도 이어가는 선교
다음 목적지는 바울이 3년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수고하며 애정을 쏟은 곳, 현재 ‘에페수스’로 불리는 ‘에베소’였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이곳은 성서적으로도 뜻깊다.
에베소는 사도신경의 뿌리가 된 ‘니케아 신조’를 재확인한 제3차 공의회가 열린 곳이자 소아시아로 복음이 확산되는 거점이었다. 지중해와 인접한 항구도시로 번영을 누렸지만, 오랜 기간 지진과 전염병 등으로 이제는 도시의 기능을 상실한 채 관광지가 됐다.
부유했던 도시답게 에베소는 이제껏 방문한 그 어디보다 압도적인 면적이었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바닥에 뜨거운 햇빛이 반사돼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지만, 다채로운 조형물들의 잔해에 금새 시선을 뺏겼다.
대형 아고라를 비롯해, 정교하게 조각된 각종 신상과 공중 목욕탕, 화장실까지 구비한 에베소. 학문·종교·상업·문화가 두루 발달했던 도시의 위엄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에베소의 걸작으로 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뛰어난 조형미로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 거리에서 인간이 빚은 솜씨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만 높이지 않았을까. 이 같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가니 2만 5천명이 입장할 수 있는 대연극장이 나타났다. 아직도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존돼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곳은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소요 사태’가 일어난 곳이다. 당시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은 바울 때문에 자기들이 섬기는 아데미 여신의 위상이 떨어지고 신상 판매가 줄어든 것에 분노해 주민들을 이 연극장으로 불러 모아 소란을 주동했다. 이때 서기장이 나타나 불법 집회라고 공표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이규환 목사는 “우상과 마술의 도시 에베소에서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등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냈다”며 “바울이 전한 ‘진리’를 듣고 회심한 우상숭배자들은 신상을 버렸고 마술사들은 공개적으로 주술책을 불사르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음에는 ‘생명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곳마다 재앙이 물러난다”며 “바울은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다고 고백했다. 그 결과 아시아와 유럽,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는 위대한 결실을 맺었다”고 부연했다.
한편, 백석 성지순례단은 에베소에서 80km를 달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서머나 교회, 즉 ‘폴리갑 기념교회’로 이동했다. 사도 요한의 제자요 서머나 교회의 4대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박해자들로부터 신앙의 변절을 요구받았지만 “86년을 살면서 예수님은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다”며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우리 일행은 도심부에 위치한 폴리갑 기념교회의 외관만 감상했지만, 그 짧은 틈에도 짙은 여운을 느꼈다.
전남 광주 예담교회 윤영옥 목사는 “에베소와 서머나를 거치면서 전도와 선교는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임을 깨달았다”며 “서머나 교회를 향해 주님이 ‘네 환란과 궁핍을 내가 알거니와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에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무슬림’으로 뒤덮인 땅
전 세계 재복음화 열망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한 튀르키예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에 양발을 걸친 지정학적 특성으로 자연스럽게 다양성이 공존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이스탄불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으로 통한다.
하지만 종교에 있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다. 안타깝게도 이슬람이 99%를 차지하며 국교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성지순례 마지막 날 백석의 목회자들은 초대교회의 요람이었지만 기독교의 번영을 계승하지 못하고 믿음의 대가 끊긴 이스탄불 곳곳을 거닐었다.
목회자들이 먼저 도착한 곳은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인 술탄 아흐메트 광장이었다. 지금은 ‘히포드롬 광장’으로 불리는데, 남쪽에서 북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동서양의 문명과 시간이 한 줄로 꿰어지는 걸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성 소피아 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블루모스크에 시선이 꽂혔다. 흰색 타일에 푸른색 돔, 6개의 미너렛을 가진 블루모스크는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된 가운데, 곳곳에 히잡을 두른 여인들과 하루 다섯 번 꼬박 울리는 아잔 소리가 이슬람 국가로 변모한 이스탄불을 증거하고 있었다.
이규환 목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라는 첫 이방인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를 통해 세계에 전파됐다. 그러나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모두 무너져 흔적만 간신히 남았고, 기독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의 신앙이 왜 전수되지 못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라며 “튀르키예뿐 아니라 지난 2천년간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유럽도 재복음화의 과제가 절실하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교회, 정체기를 지나 감소세에 접어든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28장으로 끝이 났지만, 그 사명은 오늘 우리와 교회를 통해 주님 오실 날까지 지속돼야 한다. 바울의 삶은 비록 로마에서 멈췄지만, 이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전도자의 소명을 이어가야 한다”고 격려했다.
백석 성지순례단은 끝으로 동서양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유람선으로 관광했다. 이들은 선상에서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성지순례의 모든 일정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렸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이 땅에 회복되길 소망했다는 충남 서산 예원교회 배영숙 목사는 “신앙이 계승되지 않은 튀르키예 땅을 밟으면서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한 바울은 참으로 값진 인생을 살았고 영광스런 죽음을 맞았다. 오늘날 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목양지에서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돌아봤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처소에서 최선을 다해 후대에 믿음을 잘 물려줄 수 있는 충성된 종이 되겠다”고 결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