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행전] 사랑의 매칭 포인트
이의용의 감사행전 (83)
아이가 부모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떼를 쓴다. 이에 대처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귀찮아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당장 사주는 부모. 돈이 없다며 한 마디로 거절하는 부모. 용돈을 모아서 사라며 거절하는 부모. 시험 성적을 어느 정도 올리면 사주겠다며 어떤 조건을 내거는 부모. 그런가 하면, 왜 자전거가 필요한지 부모를 설득해보라고 하는 부모도 있다. 나는 마지막 유형의 부모가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왜?”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부모는 자전거보다 더 큰 걸 선물하게 된다. 떼를 쓰는 아이와 밀당을 벌이기 싫어 당장 자전거를 사주는 부모는 최악이다. 이런 아이들의 자전거는 얼마 가지 않아 바람이 빠진 채 아파트 계단에 방치되기 쉽다. 러닝머신이 거실의 빨래걸이 신세가 되듯.
그런데 이런 부모도 있다. 자전거 구입비 중 절반은 부모가 부담할 테니 나머지 절반은 아이가 용돈을 모아 부담하자고 제안하는 부모. 신중한 판단을 하도록 돕고, 자립심을 길러주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어느 대학은 동문이 장학금을 기부하면, 대학이 그만큼을 더 보태 더 큰 장학금을 마련해주고 있다. 또 어느 기업은 고객들이 카드 사용으로 적립한 포인트를 ‘사랑의열매’라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경우, 기업이 그만큼을 더해주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기업도 좋은 이미지를 얻고, 기부하는 고객도 보람을 얻게 하는 좋은 이벤트다.
필자도 교회에서 비슷한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 장학금 영수증의 반쪽은 소정의 금액을 받았다는 회계 영수증으로, 다른 반쪽은 서약서로 했다. 이번에 받은 장학금만큼 이 다음에 누군가에게 갚겠다는 약속이다. 장학금을 받는 걸로 그치지 않고, 훗날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갚겠다는 작은 꿈을 품게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매칭 포인트(Matching Point)’ 또는 ‘포인트 매칭’이라고 한다. 매칭 포인트는 누군가의 의욕을 꿈틀거리게 하는 좋은 동기(動機) 부여 방법이다.
미국은 기부 문화가 정착돼 있다. 우리와 달리 초등학교부터 각급 학교들은 학부모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많은 영세 국민들이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살아간다. 동네 공원의 벤치들도 부모를 추모하거나 여러 특별한 날을 기념하면서 기부한 것들이 많다. 얼마 전 하버드대 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이스라엘을 규탄한 일이 있다. 그러자 그동안 엄청난 기부를 해온 유태인계 재벌이 지원을 끊는 바람에 학교가 비상에 처해 있듯이, 대학의 장학금은 대부분 기부금으로 이뤄진다.
기부하는 기쁨도 기부한다!
그런데 졸업생에게도 거액의 격려금을 주는 억만장자가 나타났다. 로버트 헤일이라는 미국의 억만장자는 4년 전부터 졸업생들에게 현금을 선물해오고 있다. 그래닛 텔레커뮤니케니션즈의 창업자인 헤일의 순자산은 54억 달러(약 7조 3,720억원)에 이른다. 헤일은 4년 전부터 미국 대학을 돌며 졸업생들에게 현금 1,000달러씩을 선물해오고 있다. 2021년 뉴욕 퀸스칼리지를 시작으로, 매사추세츠주 록스버리 커뮤니티칼리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대학에 이어 2024년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다트머스대학 졸업식에서 졸업생 1,000명에게 현금 1,000달러(137만원)씩 나눠주었다. 매번 13억원을 나눠준 셈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자신이 선물한 돈의 절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해보라는. 그래서 기부의 기쁨을 누려보라는. 1,000달러만 기부한 게 아니라 ‘기부의 기쁨’도 함께 기부한 셈이다. 졸업생들은 1,000달러에 비할 수 없는 큰 선물을 받았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청년들은 1,000달러 중 500달러를 누군가에게 기부하리라. 지혜로운 청년들은 500달러를 건네면서 절반은 다른 사람에게 기부를 해보라고 권하리라. 어떤 청년은 1,000달러를 그대로 누군가에게 기부하면서 절반은 누군가에게 기부하라고 권하리라.
‘기부(寄附)’라는 단어가 ‘Give’라는 영어 단어와 발음이 비슷한 건 참 묘하다. 헤일은 정말 돈도 잘 벌지만, 돈을 잘 쓸 줄 아는 부자다. 그의 1,000달러 선물은 어떻게든 돈을 긁어 모으는 걸 복으로 여기는 이들, 형편 어려운 이들에게 적선하듯 몇 푼 던져주는 걸 기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큰 생각거리를 남겨준다. 사랑의 매칭 포인트! 받은 은혜를 독차지하지 말고, 다른 누군가와 나누자. 나아가 그도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자!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