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넷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믿음의 금 방패
열왕기상 14:25~28
찬송: 88장
애굽왕 시삭이 침공해서 성전의 모든 보물과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가져갔습니다. 르호보암이 시삭왕에게 금 방패를 뺏긴 후, 금 방패 대신 놋 방패로 대신하게 했습니다. 놋도 잘 닦으면 금색 비슷하게 나올 수 있지만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금 방패는 믿음의 방패 즉, 은혜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놋 방패는 심판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보게 합니다. 마귀는 창세기 3장 1절에서 하와에게 찾아와 ‘하나님이 동산의 모든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하면서 마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닌 인색하신 분으로 인식되게 합니다. 이렇게 사단의 최대 공격은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풍성하신 분이요 오래 참으시는 분으로 알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귀고 싶은 믿음이 생깁니다. 마귀는 이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사단의 어떠한 참소와 미혹의 불화살도 막아내는 믿음의 금 방패를 가져야 되겠습니다(엡 6;16).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분(엡 3:20)을 믿으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끝까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마침내 우리에게 복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신 8:16)을 믿고 신뢰함으로 승리합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에게서 오는 꿈과 지혜
창세기 37:5
찬송: 490장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 덕분에 요셉과 이복형제들의 관계는 꿈꾸기 이전보다 더욱 악화합니다. 심지어 꿈 이야기는 요셉 살해 욕구까지 형들에게 발생시킵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이 자발적으로 만든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요셉에게 복이 아니라 화가 됩니다. 요셉은 겨우 17살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좋은 것을 주셔도 그것을 현실 생활에서 잘 풀어내기에 지혜가 매우 부족한 나이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셔도 우리에게도 좋고, 주변 사람에게도 좋은 것이 되려면 굉장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셉은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비전이 형들을 죄짓게 하고, 가족끼리 서로 아프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렇지만 좋으신 하나님은 결국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십니다.
혹시 하나님에게서 좋은 꿈과 비전을 받으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현실에서 그것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이 주변의 사람에게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주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도 요셉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사무엘상 8:1~22
찬송: 94장
사무엘이 늙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요구합니다(5). 왕을 갖고자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기는 다른 주변 나라들과 같아지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왕 제도의 위험성을 엄히 경고하셨지만(9~18), 백성들은 상관없다며 왕을 요구합니다(19). 하나님은 백성들의 모습을 보시며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시며(7),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말씀하십니다(22). 우리는 왕을 요구한 이날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결국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구약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본래 이방 나라들과는 ‘다른’ 나라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 되사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주변 이방 나라들과 ‘같은’ 나라가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이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금 세상 사람들과 같아지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곳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세상으로 돌아서지 않아야 합니다. ‘No turning backe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외치며 사명의 자리를 지켜내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여, 찬송가 94장 처럼, 유혹과 핍박이 몰려 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게 하옵소서.
영혼을 구하는 열정
요한복음 4:5~19
찬송: 349장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는 것이 벽이었다면 최대의 벽은 인간과 하나님의 벽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벽을 자기 아들을 통해 먼저 깨트리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혼의 구원에 쓰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큰 한 가지 이유는 우리 자신이 벽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인종과 이질적 문화라는 벽을 깨트리고 그곳의 사람들을 사랑하였기에 선교사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 벽이 깨트려지는 기적이 일어날 때 구원의 기적들도 이어질 것입니다.
복음의 영역은 전인격적이며, 전생활적이어서 어떤 생활 소재도 복음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전도 훈련은 긴급합니다. 영혼을 살리며, 영혼을 진단하고 처방하고 진료하는 영적 치유 훈련이 되어 있는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복음 진리는 제시하지만 죄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대 전도의 아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죄입니다. 주님은 남편 다섯을 두며 죄의식 없이 살아온 그녀의 무감각을 정면으로 다루셨습니다. 결국 이 도전이 그녀를 구원했습니다.
아픈 곳을 얼버무리고 덮어두면 구원도 치유도 아닙니다. 이렇게 치유적 차원의 도전을 제시하려면 성령으로 살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이끌어 영혼을 살리는 영적 치유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기대
마가복음 11:12~14
찬송: 342장
참된 회개는 지식이 새롭게 되는 것, 마음(감정)이 새롭게 되는 것, 행동이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한 번에 확 모든 것이 변하면 좋겠지만 점진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은혜를 고백한다면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앞으로 가셨는데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열매맺을 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를 저주하였고 무화과나무는 말라 죽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보신 무화과나무는 잎사귀가 많아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처럼 보였는데 살펴보니 앞으로도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더 이상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어서 결국 그 나무를 저주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곧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이고,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어떤 기대도 갖지 못함을 이 나무를 통하여 보여주시며 십자가의 죽으심이 새로운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고난의 죽음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대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이 구원해 주셨으니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해 봅시다”
에스더 4:14~17
찬송: 540장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끝까지 인내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바로 보고, 먼저 나를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고난을 만나도 감사하고 화가 복이 될 것을 믿으며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에스더도 위기를 만났습니다. 사촌오빠인 모르드개는 바벨론의 포로였던 유다 사람 에스더에게 포로의 신분을 속이고 왕후가 되도록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절하지 않았던 모르드개를 미워한 하만은 유다 전 민족을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이것이 에스더가 만났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문제 앞에서 우리는 ‘상황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나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 직시해야 합니다. 또한 ‘때’를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전 민족의 죽음 앞에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질문하였을 때, 에스더는 금식한 후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간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분별하여 기도하였을 때 모두를 구하는 미래가 열렸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을 거울삼아 현재를 바로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를 기대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오늘의 결정을 잘해야 합니다. “해 봅시다!”, “문제 앞에서 기도해 봅시다.” 이렇게 결단하며 승리하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에게 결단의 믿음을 주셔서 “해 봅시다”를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