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의 헌신으로 탄생한 최초의 병원

한국 기독교 유산을 찾아서 (1) // 세브란스병원의 출발(상)

2024-02-01     김태현 수습기자
초창기

국내 빅5 종합병원으로 꼽히는 세브란스병원, 이 병원의 사명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이다. 세브란스병원의 이름인 영어 단어 ‘Severance’는 단절, 해고 등 뜻을 가지고 있다. 병원에 쓰기에 적절치 않은 단어다. 왜 굳이 세브란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의 헌신에 대해 알아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제중원의 역사를 계승했다. 제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왕립병원이다. 1885년에 설립되어 처음에는 광혜원이라 불렸으나 곧 ‘백성을 구제하는 집’이란 뜻의 제중원으로 개칭했다. 조선 왕립병원이었지만 알렌, 헤론, 에비슨 등 선교사들이 원장직을 담당했다. 즉 조선 왕실과 선교사들의 공동 운영 방식이었다. 의료선교사들은 조선 왕실에 고용된 입장은 아니었으며 선교적 관점에서 봉사했다. 제중원은 조선 정부의 의료기관인 동시에 선교사들의 의료선교 기관으로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1894년 제중원 4대 원장 에비슨 선교사는 조선 왕실로부터 운영 전권을 요구하며 조선 왕실과 협상을 시작했다. 에비슨 선교사는 파업 등의 방식을 채택해 조선 왕실을 압박했다. 청일전쟁, 동학농민운동 등 국내외의 혼란한 정세에 반사이익을 얻어 운영권을 얻는다. 제중원의 운영 주체는 에비슨 개인이 아닌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갖게 됐다.

협상에서 조선 정부는 1년 전에 통보할 경우 제중원을 환수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한다. 이에 에비슨과 선교사들은 새로운 병원을 설립할 계획을 한다. 에비슨은 안식년에 고국 캐나다로 돌아가 1899년부터 병원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모금 활동을 했다. 1900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서 발표자로 나서 호소했다. 에비슨의 연설에 감동받은 루이스 세브란스가 병원 설립 기금 10,000달러를 헌금했다.

새로운 병원은 1902년 11월 27일 추수감사절에 기공했고, 세브란스병원이란 이름으로 1904년 9월 23일 탄생했다. 조선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 탄생한 것이다. 세브란스라는 명칭은 설립 기금 기부자 루이스 세브란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세브란스병원은 의과대학을 조직하여 조선인 의료인력 배출에도 힘썼다. 1909년 세브란스의학교 인가를 받았고 1947년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승격했다. 1957년 연희대학교와 합병하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이 됐으며 세브란스병원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