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생명을 위협받는 위기청소년들에게 교회는 따뜻한 안식처입니다”
■ 위키코리아 대표 임귀복 목사 12년째 위기청소년들의 ‘급식·주거·자립’ 지원에 구슬땀 ‘일진캠프’로 복음 전해…예수님 만나 삶이 변화된 아이들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위기청소년은 골칫덩이로 치부된다.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 가출을 일삼고 제도 밖을 위태롭게 서성이는 아이들은 사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데 여기 온갖 상처로 얼룩진 아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어온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위키코리아 대표 임귀복(61) 목사다. 지난 12년간 배고프고 갈 데 없던 위기청소년들에게 엄마의 역할을 자처해온 그는 “세상에선 ‘문제아’에 지나지 않는 아이들도 제 눈에는 ‘순한 양’처럼 보인다”고 말하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최근 임 목사가 시무하는 곳이자 위기청소년들의 소중한 아지트인 주영광교회를 찾았다. 인터뷰 내내 쉴 새 없이 울려댄 그의 핸드폰은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절실한 사정을 짐작하게 했다. 위기청소년들의 막막한 삶에 교회는 분명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죽음과 가까운 아이들
“자신을 보호해 줄 가족도 학교도 없는 위기청소년들은 ‘죽음’과 가까운 아이들입니다. 먹고 자고 공부하는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없어서 누군가 개입하지 않으면 바로 서기 힘들거든요. 범죄에 빠져 생명의 위협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바로 위기청소년들입니다.”
위키코리아를 이끌며 위기청소년들의 ‘급식·주거·자립’을 위해 힘써온 임 목사. 그는 위기청소년들을 이렇게 정의했다. 단체명 위키코리아는 ‘위기청소년들이 이 나라의 중요한 키(Key)가 된다’는 소망을 담았다.
위키코리아는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한다는 비전 아래 △긴급구호 △무료급식 △상담 △학업 및 일자리 연계 △법률지원 등에 구슬땀을 흘린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임 목사를 거쳐간 아이들은 수백여명에 달한다.
임 목사가 위기청소년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는 배경에는 본인 또한 인생에서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본 경험이 자리한다.
“20대 중반이던 당시 저는 우울증을 앓고 죽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래도 지옥보다는 천국에 가자고 생각해서 교회를 찾아갔죠.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스스로를 세상의 먼지쯤으로 여기던 저에게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그날로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임 목사는 부르심에 순종해 주의 종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한지 3년째 되던 2011년 운명처럼 위기청소년들을 알게 됐다. 사역의 첫 단추가 꿰어진 순간이었다.
“서울의 한 교회 청년들이 우리 교회에 단기선교를 왔어요. 그리고 노방전도에서 만난 방황 청소년 열댓 명을 교회로 데려왔죠.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밤이 돼도 이 아이들이 집에 안 돌아가는 거예요. 왜 안 가냐고 물었더니, 집 나온 지 한 달 됐는데 지낼 곳이 없다는 겁니다.”
임 목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토록 많은 청소년들이 배회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들이 위험하게 주차장이나 공동화장실에서 잔다는 겁니다. 피부병 등 질병을 달고 사는 건 기본이고요. 그러다 아이들의 손목에 그어진 자해 흔적을 보고는 깨달았죠. 얘네들이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지못해 산다는 사실을요.”
이때부터 의지할 곳 없는 위기청소년들을 위한 이른바 ‘갱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우선 “여기는 너희들의 교회다. 언제든지 오라”는 임 목사의 말에 진짜로 발을 들이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이자는 마음으로 ‘무료급식소’를 차렸다.
2011년 문을 연 무료급식소는 올해 서울 화곡역에 ‘만나하우스’라는 간판을 달고 24시간 운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꾸려가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매달 수십명의 아이들이 방문해 임 목사와 식사도 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언제 밥을 먹었냐고 물으면, 기억을 더듬다가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씩 굶은 친구도 있죠. 그런데도 위기청소년들만을 위한 무료급식소는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임 목사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접한다. 미혼모가 된 아이부터 빚더미에 앉아 신용불량이 되거나 학대를 당해 온몸에 멍투성이인 아이까지. 가까이서 들여다본 위기청소년들의 실상은 예상보다 더 비참했다.
“한 번은 음독자살을 시도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모두가 이 아이를 향해 가망이 없다고 했죠. 고생을 덜 해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그 친구가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더 고생을 해야 하죠?’라고 반문하는데, 저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동시에 임 목사의 가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님이 ‘이 아이는 내가 너에게 준 선물이다’라는 거예요.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자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환경과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위기청소년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검정고시 교재를 사서 같이 공부하고…. 그 와중에 찬양과 말씀을 들려주고. 지난 세월 교회에서 이들과 동고동락하는 동안 물론 주위의 따가운 눈총도 견뎌야 했다.
교회 때문에 질 나쁜 아이들이 동네에 모여든다고 수군대는 주민들부터, 냄새나고 시끄럽다며 교회를 아예 떠나버린 성도들도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사역”이라며 걱정하거나 “아이들이 목사님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에게 급한 일이 생기거나 법정 송사에 휘말리면 임 목사가 사비를 터는 일도 허다했다.
그렇지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임 목사는 결코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에 부딪힐 때 제일 힘들다”며 “위기청소년들도 가끔 ‘우리가 무섭지 않냐’고 묻는데, 제 눈에는 순한 양들일 뿐이다. 세상에선 말썽도 피우지만, 교회 울타리 안에서는 선하게 바뀐다. 이들에게 교회는 날선 마음을 재우는 쉼터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탈선한 비행청소년들을 두고 ‘가해자’라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나 임 목사는 “위기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어그러진 단면”이라며 “이들도 1차 피해자다. 유년 시절 가족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생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가정과 학교, 국가가 이들을 돌볼 책임은 외면한 채 손가락질만 해서는 안 된다”며 “위기청소년들을 뿌리치면 다시 범죄에 노출돼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대신 이 아이들을 교회가 품으면 더 큰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복음으로 일으킨 인생
임 목사는 2015년부터 매년 청소년 연합 수련회인 ‘일진캠프’를 진행해오고 있다.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복음의 씨앗을 심는 기회다. 여기서 ‘일진’이란 ‘유일한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영적 회복과 건강한 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형성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 멘토와 멘티가 결연을 맺는 방식을 도입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크리스천 멘토들은 청소년 멘티와 일대일로 연결돼 2박 3일간 숙박하며 친밀하게 소통한다. 멘토와 멘티는 캠프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류를 약속하며 중보기도할 것을 다짐한다.
“사역 초반에는 아이들이 다투거나 중도에 뛰쳐나가는 건 아닐지 염려했지만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어른들의 관심이 절실했던 아이들은 자신의 곁에 꼭 붙어 눈물로 기도하고 챙겨주는 멘토에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였어요. 올바른 어른의 존재가 부재했던 아이들에게 멘토는 선망의 대상이자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캠프 후 아이들의 삶에도 긍정적 변화가 이어진다. 알코올에 중독됐던 아이들이 술을 끊는가 하면 금연 동아리를 만드는 등 생활 속 나쁜 습관을 절제해 나간다. 낙태를 염두에 둔 아이들이 아기를 낳아 기르려 하고, 틀어진 또래 관계를 돌이키며 사회화를 이뤄가는 사례도 있다.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이웃을 돌아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시도가 일어났다는 건 아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갔다는 증거입니다. 꿈도 없던 아이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노력하면 내 인생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일어서고 있습니다.”
물론 임 목사도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인간적으로 화가 치미는 적도 왜 없었을까. “하루는 제가 ‘하나님, 저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 아이들이 전부 변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제가 받은 응답은 ‘지금 네가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도 능력’이란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 ‘인내’가 있잖아요. 그 인내로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것이 기적인 줄 믿습니다.”
임 목사의 인내는 정말 기적처럼 귀한 열매를 맺었다. 그토록 바랐던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청년들부터 목사·선교사가 되어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이, 위키코리아에서 후배들을 섬기는 이도 있다. 이들은 모두 임 목사가 지금껏 사역을 지탱해온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한편, 임 목사는 위키코리아와 취업연계가 가능한 직업교육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자립준비청년들의 안정적인 사회 진출을 서포트하고 있다. 아이들이 송사에 휘말릴 경우에는 법무지원도 나선다. 뿐만 아니라 현재 그는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위원으로서 지역사회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과 범죄예방 활동도 나서고 있다.
위기청소년을 보살피는 일에만 무려 10년 넘게 열정을 쏟아온 그는 어느덧 베테랑 사역자이자 전문가로 거듭났다. 이런 임 목사는 “한 명의 위기청소년을 두고 수많은 문제가 둘러싸는 만큼 개인의 힘만으로는 이 사역을 감당하기 역부족”이라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한국교회야말로 이 사역의 적임자다. 교회들이 ‘연합’해 적극 동참해 달라”고 간절히 소원했다.
“위기청소년들은 ‘하늘의 보화’입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잘 보이지 않지만, 이 나라를 견인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죠. 병자와 연약한 자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따라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위기청소년들을 함께 섬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