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학문도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신 선물, 적극 활용해야

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20) 일반계시와 일반학문

2023-07-26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박찬호

16세기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지동설이 등장하였을 때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여호수아 10장 12절 말씀에 근거하여 반대하였다. 여호수아가 멈추라고 한 것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었다는 것이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실소(失笑)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죽던 해 출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루터교 신학자 안드레아스 오시안더의 감수 아래 이루어졌다. 이 오시안더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인간론과 기독론을 다루는 내용에 칼빈의 논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시안더를 악명높은 이단자였던 세르베투스(Servetus, 1511-1553)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한 다소 신비적인 주장을 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오시안더의 조카 중 한 명은 영국 성공회의 초기 지도자 토마스 크랜머의 아내가 되기도 하였다.

루터주의자였던 오시안더는 책의 내용이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며 교회와 마찰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여 코페르니쿠스의 허락 없이 그의 체계가 ‘계산상의 편의를 위한 추상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문을 추가하기도 하였다. 

칼빈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간된 몇 년 후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는 것은 지구이고 지구가 돌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자연의 질서를 뒤엎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설교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지동설을 반대하는 듯한 칼빈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칼빈이 코페르니쿠스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었을 것이며 단지 전통적인 지질학적 우주론(the traditional geokinetic cosmology)을 지칭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죽던 해에 자신의 지동설을 책으로 펴내었기에 별반 교회와 충돌없이 평온하게 삶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지동설을 주장하였다가 가톨릭교회와의 충돌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갈릴레오의 예는 새로운 과학의 연구 결과와 종교적인 권위가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이 되곤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어쭙잖게 종교의 권위를 내세우다가 낭패를 겪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떤 분야에 대한 학문적인 이론을 만들어 나갈 때 그 학문의 출처로서 성경과 다른 일반학문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하여 두 가지 극단적인 이론이 존재한다. 첫째는 성경만을 권위로 인정하고 다른 모든 분야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면 정당해 보이지만 배타적인 입장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구원에 관한 충분한(sufficient) 지식을 제공해 주지만 모든 분야에 걸친 망라(exhaustive) 지식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성경이 모든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을 망라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잘못임이 드러난다. 성경은 공룡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성경에 공룡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고 공룡이 이 지구상에 실존했음을 부정하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성경은 담배에 대해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나름대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지를 성경적으로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므로 성경만을 유일한 지식의 근원인양 생각하는 것은 지양(止揚)해야 할 태도이다.

이와는 반대되는 극단적인 입장은 성경 이외의 자료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이다. 그렇게 될 때 기독교적인 어떤 학문 이론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세속학문의 영향 아래 전적으로 놓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것도 경계해야 할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소위 조심스럽게 도출된 성경적 원리를 가지고 일반학문의 연구 결과들을 비판적으로 활용할 때 바른 기독교적인 또는 성경적인 어떤 이론이 정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학 이외의 일반학문을 우리는 일반계시적인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학문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학문의 연구결과들에 대해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칼빈은 심지어 무신론자들의 주장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물리학, 변증학, 수학 등의 학문들에서 불경건한 자들의 업적과 활동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셨다면, 마땅히 그런 도움을 받아들여 사용해야 한다. “이런 학문들에서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선물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나태함에 대하여 공의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기독교 강요>, II.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