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혼자만 잘 살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우리나라의 농부 철학자 전우익 선생의 말이다. 그분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자꾸만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이 각박한 시대에 더욱 생각나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잘 살아도 이웃이 못 살면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는 일깨움을 준다.
이 말은 사실이다. 친구 가운데 치과의사가 있는데, 예전에 아주 잘나갈 때는 어찌나 돈이 많이 벌렸는지 갈퀴로 긁듯이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매가 열 남매이고, 그 가운데 가난한 동생들이 많아 툭하면 도와달라 하며 원망하기 일쑤라서, 잘 살기도 참 힘들단다. 모든 남매가 함께 잘 살아야지, 혼자만 잘 산다고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말을 듣고 알았다.
7년간 지인들에게 아침톡을 보내면서 내가 깨달은 진리도 이런 것이다. 어느 날 아침톡을 받은 친구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이 교수, 가족 자랑은 아침톡으로 보내지 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고통일 수가 있어.”
그때 또렷이 깨달았다. 아, 함께 잘 살아야지, 혼자 행복하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다시는 아침톡에 가족 자랑은 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에 실수했다. 끼니마다 아내가 차려 놓은 음식 앞에서, “먹을 게 너무 많아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아침톡을 보내자, 어떤 지인이 천만 뜻밖의 댓글을 보내와서 놀랐다. 딱 한마디 “아침 테러 수준”이라고 보내왔기 때문이다. 내 아내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그런 줄 오해했거나, 아내가 어떤 음식을 줘도 군말 없이 잘 먹는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줄로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전혀 자랑할 의도가 없이 보낸 아침톡이지만, 그분한테는 ‘테러 수준’의 글로 읽혔다니,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
이 사건 이후에 내 기도도 달라졌다.
“하나님, 우리 교우들 앞에서, 마음껏 내 자랑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해 주세요.”
아직 취업 못해 걱정하고 있는 교우 앞에서, 어찌 내 자식 직장 잘 다닌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큰 질병으로 고생하는 교우 앞에서, 어찌 나는 그런 대로 건강하다고 자랑할 수 있으랴? 이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기도한다. 제발 우리 서로 맘껏 자랑하며 지낼 수 있는 그런 날을 맞이하게 해 주시라고 간구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이른바 간증집회를 마냥 좋아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지방에서 목회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금요일마다 집중적으로 열리는 서울 어느 대형교회의 줌 간증집회에 들어가보라고 했으나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나도 한두 번 들어가 보았지만, 예수님 믿으면 만사형통이라는 메시지 일색인 게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 간증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지만, 예수님 믿는다고 모두 만사형통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예수님 잘 믿어도, 불의의 사고로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인 경우도 있다. 어쩌다 빚보증 잘못 서서 물질적으로 어려운 교우도 있으며, 탁월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하는 일마다 어그러져 기를 못 펴고 사는 교우도 있다.
성경을 봐도 그렇다. 사도 바울이 그런 분이다. 모든 것 버리고 주님만 위해 온몸을 바쳐 전도여행에 투신하였으나 순교를 당했다. 우리나라 초기교회 신앙인들의 자료를 보다 보면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자녀들도 잘돼야 하는데,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처럼 그렇지 못한 사례도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간증을 잘 시키지 않아서 좋다. 간증을 한다 해도, 고난 속에서도 굿굿이 버티고 있는 분들을 세우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다수의 청중들이 그 간증을 들으면서, 아, 나만 어려운 줄 알았더니 저분도 아프구나! 그런데도 믿음으로 잘 견디고 있구나! 이런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이 말이 우리 신앙인의 고백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복 받아 누리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잘 살기를 기도하며 나누는 즐거움으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