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부족해 그만두는 선교사 없도록, 든든한 서포터 될게요”
42년째 선교사 지원 외길… 1천명 협력 선교사 재정 지원 힐링바우처·선교관 쉐어 등 선교사에 필요한 모든 사역 감당
설리번이 없는 헬렌 켈러를 상상할 수 있을까. 빛나는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 섰던 것은 헬렌 켈러지만 그 뒤에는 헌신적으로 그녀를 섬겼던 앤 설리번이 있었다. 비단 설리번뿐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인 이들 곁에는 언제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리를 지켰던 조력자들이 존재한다.
선교 역시 선교사들 혼자 힘만으론 이뤄지지 않는다. 선교지에서 사업을 하거나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선교사들은 후원을 필요로 한다. 사단법인 아시안미션(대표:이상준 선교사)은 선교사들이 오롯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선교지원 단체다.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교 파송 단체는 아니지만 무대 뒤에서 묵묵히 그들이 빛날 수 있도록 헌신한다. 파송단체와 함께 세계선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조력자들의 이야기를 지난 9일 이상준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가장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아시안미션은 이랜드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1980년 이랜드를 창업하며 수입의 10%를 선교에 쓰겠다고 다짐했고, 다짐의 실천을 위해 함께 세워진 것이 바로 아시안미션이다. 42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으니 한국 선교의 역사를 대부분 곁에서 지켜보며 동역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아시안미션이라는 이름 때문에 종종 아시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냐는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이름 속 ‘아시안’은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의미를 품고 있다. 아시안미션이 설립되던 1980년은 아직 서구권이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있던 때. 이제는 한국교회를 포함한 아시아인이 세계 선교를 주도하자는 의미에서 아시안미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시안미션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재정 후원을 통한 선교사 지원, 즉 펀드레이징이다. 아시안미션은 싱글 선교사에게는 매월 10만원, 가족과 함께 있는 선교사에게는 매월 20만원을 2년 동안 지원한다. 2년간 동역 후 별 다른 이슈가 없다면 다시 2년 지원이 갱신되어 10년간 지원을 원칙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아시안미션이 정기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협력 선교사가 벌써 1천명에 이른다.
현장에서 4년 이상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라면 카카오톡 ‘AM’ 채널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국내외 후원자 연결이 매우 열악해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4인 기준 사역비가 250만원 이하라면 지원기준에 충족한다.
1천명이나 되는 선교사를 지원하면서 모두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이상준 선교사는 아시안미션이 지원하는 모든 선교사를 만나고 가능하다면 현장까지 찾았다. 가장 절실히 지원을 필요로 하는 선교사,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선교사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지원 선교사를 선정할 때 세 가지 기준을 놓고 봅니다. 첫째는 야성이 있는가, 둘째는 골방에서 기도하는 선교사인가, 셋째는 청렴한 선교사인가가 바로 그것이죠. 지금은 제가 지원하는 모든 선교사님들을 만나며 기준에 부합하는 확인하면서 소통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선교지에서 철수했거나 심지어는 돌아가셨는데도 돈이 계속 나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아시안미션이 존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교사들이 죽을 때까지 현장에 있도록 돕는다’는 것. 남들이 가지 않는 오지에서 편리함을 포기한 채, 오랜 기간 같은 사역을 이어가고 있으면서도, 사역비가 넉넉하지 않은 선교사라면 아시안미션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름이 잘 알려진 소위 메이저 단체나 교단에 소속된 선교사들은 약 2만2천명의 한국 파송 선교사 중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다 소규모 단체에 소속돼 힘들게 사역을 이어나가는 분들이 많죠. 같은 선교사라 해도 몇몇은 여유 있게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는가 하면, 꿈도 꾸지 못하고 로컬학교에 보내는 분들도 있죠. 그런 소외된 이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아시안미션의 선교사 지원은 정기 재정 후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년, 아니 길게는 수십년을 한국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헌신했을 선교사들을 위해 가족과 함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준다.
‘힐링바우처’라는 이름이 붙여진 프로젝트에선 매주 5가정의 선교사 가정을 선발해 2박 3일간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머물 수 있는 휴양비용을 지원한다. 전국에 흩어진 3개 호텔과 8개 리조트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힐링바우처는 아시안미션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협력선교사가 아니더라도 현장에서 4년 이상 사역하고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선교사라면 신청할 수 있다.
선교관 쉐어 네트워크도 시작했다. 갖가지 문제로 잠깐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주거.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선교관을 운영하긴 하지만 문제는 각 선교관이 모두 다른 주체에 의해 운영돼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관의 문제는 몰리는 시즌에는 꽉 차있는데 나머지는 텅텅 비어있다는 점이에요. 각자 알음알음 아는 선교사들만 이용하다보니 연결된 선교사들이 한국을 찾을 때만 이용하고 그렇지 않을 땐 공간이 놀게 되는 거죠. 그걸 위해 아시안미션은 몇몇 선교관을 직접 운영하는 동시에 약 100채 정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선교사들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선교사들이 60~70대가 되면서 선교사 은퇴 이후 대책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시안미션은 유튜브를 개설해 국가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행복주택, 영구임대주택 등의 주거 정보와 노령연금, 공공일자리 정보를 은퇴선교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미 실버세대를 위한 좋은 정책들이 꽤 마련되어 있음에도 정보를 몰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에서다.
“선교사님들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무응답에 대한 상처가 많으세요. 후원을 요청할 때 차라리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렵다는 거절은 괜찮아도 무응답과 무관심은 상처가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지원 신청이 오면 가능한 18시간 안에 답장을 드리고 이후 심사와 결과 발표 일정을 말씀드립니다. 선교사님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죠. 여력이 닿는 대로 가능한 많은 선교사님들을 신속하게 지원하려고 합니다.”
이제 세계선교의 흐름이 바뀌면서 아시안미션에게도 새로운 비전이 생겼다. 그것은 우리 땅에 온 선교지, 이주민들을 향한 꿈이다. 코로나 시대 이후 선교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는 이주민 선교에 뛰어든 아시안미션은 이미 200개 유닛을 만나고 전국을 7개 지역으로 분할해 이주민 사역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주민 사역자에게도 해외 선교사에게 주는 혜택을 그대로 적용하고 약 200명 정도에게 재정지원도 할 계획이다.
올해 KWMA와 Krim이 함께한 한국 선교 현황 발표에서 한국 파송 선교사는 22,204명으로 조사됐다. 벌써 수년째 변화의 폭이 거의 없는 답보 상태다. 이제는 선교의 부흥을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이상준 선교사는 이를 위한 교회와 선교단체의 협력을 간곡히 당부했다.
“교회는 돈이 있고 인적 자원이 있는데 개교회주의, 개교단주의로 자기 사역만 할 때가 많습니다. 선교단체 역시 게토식으로 교회와 소통을 소홀히 했죠. 이제 교회는 교회가 갖고 있던 선교 자원을 오픈하고 선교단체와 공유해야 합니다. 실제적인 협력이 있지 않으면 선교단체가 몰락하고 교회 파송 선교사도 급락하고 말 겁니다. 한국 선교의 생태계를 다시 만드는 일에 아시안미션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