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교회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조손가정 돌봄 나서야”
조손가정 서류상 부양의무자 있으면, 혜택 못 받아 “정부 지원 벗어난 소외이웃에 손 내미는 교회 되길”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6년째 어린 손주를 돌보고 있는 A 할머니(75)는 팔과 다리 삭신이 쑤시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기쁨으로 손주를 돌보다가도 힘에 부칠 때면 속에서 부화가 치밀어오른다고 했다. 이혼한 아들은 5살 손주를 두고 돈을 벌겠다고 떠난 뒤 소식이 없다. 그 이후론 손주를 제 자식처럼 키웠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노쇠해진 그가 하루게 다르게 커가는 손주의 체력을 감당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손주의 면전에 대고 힘든 티를 낼 수가 없어 홀로 원망 섞인 넋두리를 쏟아낼 때가 많다고 했다.
늘어가는 ‘조손가정’
고령화 시대, 손주 양육으로 노년기를 힘들게 보내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인구 고령화, 가정불화 이혼율의 증가 등의 다양한 요인으로 ‘조손가정’의 규모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조손가정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0년 시행한 ‘조손가정실태조사’ 이후 정기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보건복지부는 통계청 장래가구추계를 인용해 조손가정의 규모를 예상하고 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국내 조손가정의 수는 2015년 기준 15만 3천 가구에 이르며, 2030년에는 27만 가구, 2035년에는 32만 1천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조손가정은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생계를 지원받아야 할 조부모가 아이를 양육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양육으로 인한 현실적 어려움과 조부모의 정신적, 신체적 위협은 고스란히 손자녀에게 돌아가게 된다. 돌봄과 보호의 기능에 취약한 손자녀는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거나 또래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빈곤 문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0년 실시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손가정의 소득 수준은 월평균 59만 7천원으로 전체 가구 소득의 6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자녀들의 친부모에 대한 현실적 양육비 지원도 부족했다. 친부 지원은 13.3%, 친모 지원은 8.6%에 불과했으며, 지원 금액도 친부 월 46만 2천원, 친모 38만 3천원에 불과했다.
소외된 ‘조손가정’ 돌보는 교회
전문가들은 조손가정이 사회적 취약계층 중에서도 복지 서비스를 받기 가장 어려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고령 조부모와 어린 손자녀가 스스로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찾아서 신청하기가 어렵고, 부모가 자녀를 떠나 조부모와 생활하는 경우 수급자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현실적 도움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 사례를 들었던 A 할머니는 “아들이 이혼 후에 아이를 맡긴 후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6년 동안 연락조차 한번 없는 부모인데 서류상 존재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고 전했다.
사실상 법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조손가정을 위해 손을 내미는 교회가 있어 눈길을 끈다. 화도교회(담임:김성환 목사)는 지역사회 내 거주하는 독거노인과 조손가정 등 30 가구와 결연을 맺고, 매년 후원금을 전달할 뿐 아니라 세탁, 반찬나눔, 동행보조, 안경지원사업 등으로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화도교회는 교회에서 선발한 저소득 10가구와 화도읍사무소의 추천으로 실질적 생활은 어렵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조손가정 20가구를 선정했다. 이밖에 화도교회는 매년 설과 추석명절이 되면 결연 가구에 ‘사랑의 명절 음식 꾸러미’와 함께 후원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에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성환 목사는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에 돌봄과 나눔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지원에서 소외된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이 주된 계층”이라며, “지금은 30가구와 결연을 맺었지만, 앞으로도 그 대상을 계속 늘려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이를 바른길로 이끄는 ‘멘토링 사역’
신체적·정서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아동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연로한 조부모를 돌보기 위해 성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재정적 지원 외에도 어린 손자녀가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멘토링 사역이 크게 도움이 된다.
NGO 러빙핸즈(대표:박현홍)는 지난 2007년부터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을 대상으로 일대일 매칭 멘토링 사역을 진행해 왔다. 현재까지 10여 년의 장기멘토링을 통해 198명이 졸업하고, 현재 183쌍이 러빙핸즈를 통해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조부모와 생활하는 손자녀는 학업이나 진로, 또래관계 등 현실적 고민에 대해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어른이 없다. 그렇기에 단순히 재정적 지원을 넘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른 친구’와의 상담이 큰 도움이 된다. 멘토와 멘티는 한 달에 두 번 이상 만나야 하며, 최소 4년부터 길게는 10년간 장기멘토링이 이어진다.
근본적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법적 제도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기윤실 좋은사회운동본부장 이상민 변호사(법무법인 에셀)는 “조손가정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손가정의 특성에 맞는 별도의 지원법이 필요하다. 당장 조부모 가정 지원법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한부모가족지원법을 개정함으로써 한부모가족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혜택을 조부모 가정에게도 부여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조손가정의 실태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현실도 문제로 거론된다. 조손가정 실태는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았으며, 조부모 및 친족이 아동을 돌보는 친족 양육가정에 대한 전반적 실태조사도 미비하다.
이 변호사는 “이제라도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조부모 가정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가 조부모 가정을 대신해 법률체계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