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구원받은 자들의 신앙고백이자 예수 생명에 대한 확증”

신년대담 - 예배가 생명이다 //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

2022-12-29     이현주 기자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무너진 예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교회가 속히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본지는 2023년 새해를 맞아 지난 3년, 교회를 향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목숨처럼 지켜낸 목회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신년 첫 대담으로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를 만나 영적인 기준에서 예배는 무엇이고 또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윤석전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3년 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교회들이 본질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요?

- 교회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영혼구원의 기능을 감당해야 하지요.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전도하고 구원하는 영혼구령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사라지고 교회의 본질인 영혼구원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교회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연세중앙교회는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예배도 기도도 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나요?

- 코로나 때 교회에 안 나오는 성도들에게 “코로나가 무섭냐? 예수님을 떠나 지옥에 가는 것이 무섭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떠나고 믿음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섭고, 죽음이 두렵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는데, 그 은혜를 코로나로 인해서 잊어버리면 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성도들의 신앙 안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스며들었습니다.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어야 할 자리를 코로나와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장악해버린 것이죠. 우리는 어차피 죽을 목숨입니다. 주님을 절대 배신할 수 없다는 신앙양심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해요. 예배를 등한시 하는 것은 복음의 결여에서 오는 행동입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가 겨우 코로나로 무너질 정도라면 어떻게 순교를 각오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로 구원받은 자들의 고백이요, 간증이요, 감사요, 곧 예수님이 주신 생명에 대한 확증인 것입니다. 

목사님 말씀대로라면 죽음을 각오하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이네요?

- 신앙을 지켜낸 믿음의 선배들을 보세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죽음이 두려웠다면 우상숭배를 거부했을까요?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말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그 한 말씀을 지키고자 목숨을 걸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과 처절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배신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 양심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협이 와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는 그런 신앙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속에 머무는 교회입니다. 세상의 걱정과 비난을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 2020년도에 대구에서 코로나가 처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정부는 신천지 프레임을 교회로 가져왔고, 교회가 집단감염의 주범인 것처럼 취급했습니다. 정부의 거리두기 기준이 발표되기도 전에 “우린 벌써 교회 문을 닫았다”고 자랑하는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어떤 요구를 하기도 전에 교회가 먼저 예배를 포기한 겁니다. 세상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느라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포기한 것이죠. 세상의 비위를 맞추고 정부의 지도에 따르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예수님께서 당시 세상의 기준이었던 유대교를 따르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만을 따르고 전하셨어요. 세상에 넘겨준 귀, 세상의 생각, 세상의 안목을 따르는 것은 세상에 흡수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교회 문을 닫는 것이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이냐, 너무 과도한 해석이 아니냐”라고 반박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기준이라면 예배를 드리다가 죽어간 일제강점기 때나 6.25 전쟁 때 순교당한 신앙의 선배들도 잘못 살았다고 해야 맞겠죠. 교회는 본질적으로 핍박이 따릅니다. 복음을 전하는 동안 교회는 늘 핍박을 받았습니다. 순교의 신앙을 본받자고 하면서 핍박받는 것이 무서워서 예배를 포기하면 안 되는 겁니다. 

결국은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지켜야 할 목회자들이 영적으로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목회자들의 영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백석대학교 설립자 장종현 목사님께서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속의 은혜가 전제됩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신학교에서 이런 복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정말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도록 가르치고 있을까요? 신학생들에게 성령 충만을 체험하도록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목회자들이 말씀의 가치보다 세속적 가치를 더 따르고 있다면 어떻게 신앙의 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많은 목사님들이 세상의 칭찬과 박수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세상이 하자는대로 해야 괜찮은 교회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박수를 받지 않았어요. 핍박을 받다 돌아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게 할 전도의 대상이지 내가 세상을 따라가선 안 됩니다. 

말씀대로라면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성도들조차도 복음과 세상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 교회가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복’입니다. 교회가 강조하는 ‘복’은 세상의 복이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갖고 부자로 사느냐, 이것을 강조합니다. 거의 모든 한국교회의 강단이 예수 믿고 잘사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육신의 복은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오직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 내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죄와 사망과 참혹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그것이 진짜 복입니다. 목사님들께서도 세상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 잘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 유대교 따르지 않아…세상 눈치보지 말아야
성경의 한 말씀 지키고자 순교한 신앙의 선배들 기억할 것
교회는 세상의 복이 아닌, 영혼구원과 영생의 기쁨 전해야
교회는 핍박의 역사, 세상의 칭찬에 익숙한 모습 안타까워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연세중앙교회는 예배를 쉬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예배를 인도하시나요?

- 기도와 찬양, 말씀과 기도가 이어지는 예배를 드립니다. 성도들이 예배당에 처음 들어오면서 기도를 시작하고요, 찬양을 50분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통성기도를 하죠. 오늘 말씀에 은혜가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하면 영적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곧바로 설교를 전합니다. 설교를 할 때는 오늘 죽는다는 각오로,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구령의 열정으로 합니다. 말씀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회개가 있고, 회개에 불이 붙으면 두 손을 들고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주일에는 한 번 예배를 드릴 때마다 2~3시간씩, 4번 드리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영적으로 숙성되는 예배를 드릴 때, 한 주간 세상에서 묻은 세상 때의 모든 껍질을 버리고 거룩한 영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유혹이 얼마나 많습니까? TV, 유튜브, 세상의 풍속들, 경제나 주거환경으로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이런 세속적인 생각을 버리고 영적인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세속에 빠지지 않도록 성도들의 영성을 끄집어내는 것이 설교이고 예배입니다. 

이웃사랑의 실천도 많이 하시고, 지역사회를 보듬는 교회로 소문나 있습니다. 

- 교회 로비에 항상 쌀이 200포 정도 쌓여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은 성도건, 주민이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했어요. 교회 주변에 배고픈 사람이 없도록 쌓아둡니다. 오류동, 온수동 주민들에게 김장도 나누고, 코로나 때는 마스크도 나눴고요. 지난해에는 대규모 헌혈운동을 전개했는데 성도들이 많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아직도 헌혈증 800개가 남아 있어요. 한 번 헌혈을 경험한 성도들이 상시적으로 헌혈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죠. 아마 1월쯤 또 헌혈을 진행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직도 피가 많이 모자라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피 흘려 인류의 죄를 해결하고 생명을 주셨잖아요? 그 사랑을 본받아 혈액 부족으로 죽어가는 환우가 없도록 우리 교회가 열심히 섬길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랑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하고 성령 충만한 예수님의 증거를 보면서 나를 살리신 구세주를 믿는 믿음으로 이어지면서 그 영혼도 함께 구원받아 천국 가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우리 사회를 보실 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 우리는 지금 인권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정의와 평화, 인권을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인륜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인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쓴소리도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한데 이것이 자유고 인권이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있어요. 개인과 개인 사이에 권면도 충고도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거죠. 인륜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합니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가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도덕과 윤리,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것마저도 제한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전쟁과 재난, 각종 재해가 끊이지 않는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 제가 봐도 지금은 참 악한 시대입니다. 세계적인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열강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이건 균형이 깨지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불안한 때를 사는 것이 사실에요. 종말의 때를 알 수는 없지만 그 날이 오면 심판이 임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최후 심판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7~50절에도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명령이 영생인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다시는 불순종하지 않는 예수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자다운 신앙의 양심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새해, 성도들이 가슴에 지닐 성경말씀 한 구절을 나눠주세요. 

-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사는 동안 예수님 말씀을 준행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의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며 천국을 사모하며 사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