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 속 더 빛나는 ‘땀의 가치’… 오래된 새 길 열다
청교도 농업 공동체 실현하는 가나안농군학교 1931년 신앙촌으로 시작, 새마을운동 모델 되기도 빈곤 극복으로 출발해 신앙 공동체이자 교육기관으로 정직과 성실로 여는 농촌 미래…한국교회 함께 하길
그곳에서는 돌마저 쉬지 못한다. 강원도 원주 가나안농군학교(교장:오세택)의 설립자 일가 김용기 장로가 거주했던 사택의 마당에는 돌과 바위가 경계근무에 임한 초병마냥 꼿꼿이 서있다. 나태하게 누워있지 않고 땅을 일구겠다는 가나안농군학교의 개척자 정신을 무생물인 돌에게까지 담은 것이다.
도박에 가까운 한탕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다. 일분일초 단위로 오르내리는 코인 시세를 보느라 핏발이 선 눈동자는 우리 시대의 안타까운 자화상이다. 하지만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외치는 가나안농군학교는 차트에 눈이 먼 엇나간 시대정신을 역행한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일확천금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땀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지난 11일 가나안농군학교 김태은 부교장과 만나 흙내음 가득한 개척 이야기를 들어봤다.
빈곤 극복이 곧 나라 살리는 길
빼앗긴 조국을 바라보는 23세의 청년 농부가 있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청년은 농민으로서 할 수 있는 국권회복운동을 결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척박한 땅을 개척해 빈곤을 극복하고 기독교 공동체 운동으로 조국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것. 1931년 일가 김용기 장로는 고향인 양주 봉안마을에 이상촌을 세웠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관으로 성장한 가나안농군학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리던 광복을 맞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렇잖아도 피폐해진 땅과 민중들의 삶을 처절하게 무너뜨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허덕여야 했다.
“어떻게 배고픔을 해결할 것인가. 빈곤을 벗어나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김용기 장로님은 피난 이후 돌아온 용인에서 신앙과 농업을 기초로 에덴향 공동체를 건설했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잘사는 모델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곳은 점차 잘 사는 모델을 보여주는 농장이자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 되어갔습니다.”
가족 중심의 공동체로 시작한 가나안 농장은 생활 개선 운동을 펼쳐갔다. 소득 증대를 위해 필요한 농업 기술을 연구하고 즉각 현장에서 적용했다. 그 바탕에는 신앙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청교도 정신이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가나안 농장의 방식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처음부터 학교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가나안 농장은 삶의 일터를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레 남자 가족방이 남자 기숙사가, 여자 가족방은 여자 기숙사가 됐고 가나안농군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공무원들과 학생, 종교를 초월해 신부님과 스님까지도 다녀갈 정도였어요.”
영성과 성실함으로 잘사는 농촌을 일군 가나안농장은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부국강병의 길을 고민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근간인 농촌이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에 농촌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보좌관들이 전국을 뒤지다 가나안농장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가나안농장을 둘러본 박 대통령이 김용기 장로님은 향해 ‘제가 혁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장로님이 이미 생활의 혁명을 하셨군요. 나라를 위해 좀 도와 주십시오’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은 매일 새벽마다 육체의 잠, 민족의 잠, 영혼의 잠을 깨우자는 의미에서 각각 종을 10번씩, 총 30번을 치고 하루를 시작하셨는데 이게 새마을운동 노래의 유명한 첫 소절 ‘새벽종이 울렸네’가 되기도 했죠.”
농촌의 미래를 찾다
공동체로 시작했기에 일반적인 학교의 모습과는 달랐다. 가나안농장의 삶을 배우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공동체로 들어와 함께 먹고 자며 땀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함께 살다 배움을 익히고 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고향땅을 일궜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학생들이 함께 들어와 살 수는 없는 일. 이들을 위해 가나안농군학교는 14박 15일, 4박 5일과 같은 특별과정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때 만든 특별과정이 가나안농군학교의 기본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한창 많을 때는 한달에 3~4천 명의 교육생이 오기도 했어요. 1년 평균으로는 1만명 정도가 찾았죠. 지금까지 다녀간 교육생의 수를 집계하면 75만 명에 육박합니다. 처음엔 농업 기술 교육이 주가 됐지만 지금은 정신교육과 인성교육, 공동체교육에도 집중하고 있어요. 마음가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변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엔 현장교육에 잠깐 제동이 걸렸다. 지금은 조금씩 문을 열고 교육을 재개하는 추세다. 사역은 잠깐 멈췄지만 코로나 사태는 오히려 지금껏 걸어온 길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사실 교육생을 받고 교육비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가나안농군학교의 본질은 공동체에 있어요. 신앙을 바탕으로 실천적 삶을 현장에서 살아내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데 교육생이 몰려들다보니 지식을 전달하는 일만으로도 지쳐 번아웃 되고 말았죠. 이제 농군학교의 원래 정신대로 자급하고 흙을 기반한 자립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싶어요.”
점점 나이가 들고 힘을 잃는 농촌의 풍경은 이 시대의 과제다. 우리나라는 일단 빈곤이라는 문제에선 한숨을 돌렸지만 아직까지 가난에 허덕이며 생계를 다투는 개발도상국도 있다. 농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 문제도 지구와 농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결코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가나안이 ‘농’이라는 글자를 달고 있는 이상 농촌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농촌을 다시 살리기 위해 먼저는 흙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는 생각에 무농약 농업, 유기농업을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가 원주에 온지 내년으로 50년을 맞는데 그동안 농장에 농약을 한방울도 치지 않았죠. 지금이야 유기농의 중요성이 많이 알려지고 기술도 발전했지만 초기에는 농산물의 질보다는 ‘어떻게 생산력을 늘릴 것인가’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먹고 살기가 빠듯한 상황에서 가나안이 외치는 ‘유기농을 하고 땅을 살리자’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직 가난에 허덕이는 지구촌 빈곤을 위해 해외 농업현장도 개척한다. 1990년대 초부터 기아와 빈곤에 신음하는 나라들에 가나안의 정신과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해외 농군학교를 세워가고 있다. 특히 저개발국가는 땅도 척박하고 관개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기에 최소한의 투자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야생농업을 개발해 전수한다. 이를 위해 부설 야생농업 연구소를 만들고 성도원(농군학교 기도원) 주변 야산을 중심으로 야생농업을 시도하고 실험을 거듭하는 중이다.
다가오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여러 산업에서 대안을 찾고 있지만 농업은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만약 탄소중립 정책이 적극 시행되면 탄소를 배출하면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을 하면서 ‘탄소세’와 ‘탄소국경세’가 붙게 되면 상품 경쟁력 또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 그래서 가나안농군학교는 생태계를 보존하며 지속가능한 농업 체계를 갖추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화석연료와 일반적인 전기를 쓰지 않고 수소를 가지고 발전해 농장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식물이 광합성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죠. 국가 연구과제인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혁신기술개발사업에 선정돼 뜻있는 대학, 회사, 연구원과 컨소시엄을 이루고 친환경농업을 연구, 시도하는 중입니다.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고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지구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오래된 새 길’
성실한 노력으로 땀을 흘려 얻은 대가, 정직과 절약, 섬김과 나눔, 그리고 효. 자칫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를 한다며 핀잔을 들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나안농군학교는 굳건한 믿음으로 우직하게 그들의 가치를 밀고 나간다. 그런데 최근엔 그들의 노력이 다시금 조명받기 시작했다. 지나친 개인주의와 한탕주의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가나안 공동체가 추구하는 미련해 보이는 정직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전부터 꾸준히 걸어왔지만 이 시대에 와서는 오히려 새로워 보이는 역설. 가나안농군학교는 지금 ‘오래된 새 길’을 걷고 있다.
일반성인 교육도 대중강연식 정신교육에서 벗어나 가나안 3S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가나안에 와서 멈추고(STOP), 머물고(STAY), 서로배우고 나눔(SHARE)는 참여형 워크숍 교육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함께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보고 함께 한 사람들과 함께 집단지성을 발휘해 액션플랜을 수림해서 가도록 교육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물질적으론 많이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론 많이 피폐해졌다고 봐요. 가나안농군학교가 단순히 모여 살고 획일적인 방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 말씀을 통해 서로를 돌아보고 받은 은혜와 복을 흘려보내는 공동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주시고 일 하게 하셨는데, 일이 고가 아니라 낙이 되려면 공동체 의식을 재정립해 함께 더불어 사는 기쁨이 확산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가나안의 정신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보편적인 진리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선뜻 실천하기엔 머뭇거리는 이들이 많다. 근로와 봉사, 희생이 바로 그렇다. 그런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이런 우직한 신념이 세상을 감동시킨다. 김태은 부교장은 가나안농군학교에 왔다가 “예수 믿는 사람 싫어했는데 교회에 가보고 싶어졌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라고 했다.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많은 선교적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리의 사명을 재정립해야할 순간이 아닐까요?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많이 추락한 상황에서 다시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면 정말 성경대로 사는 삶, 나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때 가나안농군학교의 삶이 선교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교회가 가나안과 함께 성경의 가치를 현장에서 실현하는 삶을 사회운동으로 확산시켜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