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생명화’로 영혼과 교회를 살리는 신학운동 펼쳐야”
5. 신학회복운동④ - 증인으로서 말씀읽기
신학회복운동은 신학의 제자리 찾기, 즉 영혼과 교회를 살리는 신학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는데, ‘말씀의 생명화’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고 전하는 목회자가 먼저 변하게 되어 있고, 말씀을 듣는 성도들과 교회가 살아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학회복운동의 핵심입니다. “생명있는 자가 생명을 전할 수 있습니다”(장종현 박사).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진실하십니다. 생명있는 자가 생명을 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생명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증인으로서 성경 읽기’입니다. 증인으로서의 성경 읽기를 하는 목회자가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증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행 22:15)”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증인으로서 성경 읽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방식의 성경 읽기와 비교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성경 읽기’입니다.
연구자는 기본적으로 의심하고 분석합니다. “정말 맞을까?” 그런데 증인은 근본 자세가 보는 것입니다.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그래서 연구자의 목적은 정보 습득입니다. 특별히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은 목적이 다릅니다.
보고 들은 것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볼 때, 연구자의 위치는 말씀과 거리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대한다고 해도, 정보습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내용이라고 해도, 거기에 내 인생을 헌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증인은, 자신이 전달하는 내용에 따라서 자신의 명예도, 이익과 손해도 걸어야 하고, 때로는 생명도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증인으로서 성경을 읽으면, 성경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연구자로서 성경을 읽을 때 필요한 것은, 지식과 논리적인 능력입니다. 분석하고 비평하고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증인에게 필요한 것은 다릅니다. 물론 증인에게도 논리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했다고 해서, 증인의 목적을 완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증인에게는 ‘믿음’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고, 묵상과 순종을 통해서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증언하겠다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증인’이라고 자주 말합니다(사 43:10; 행 2:32). 그런데 어떻게 증인이 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는데… 말씀의 증인이 되면 됩니다. 육신의 눈으로 주님을 본 적은 없지만,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말씀의 체험’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말씀을 읽을 때, 나와 상관없이, 내 죄와 내 문제와 상관없이, 분석하고 의심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고…거기에서 그치지 마시고, “주님, 제가 혼나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향하시는데, 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이렇게 성경을 읽고, 이렇게 성경을 체험할 때, 말씀의 생명화가 저와 여러분 속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가운데 ‘예수생명 예수생활’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신학은 학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