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을 읽어줍니다”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 (18) 낭독봉사자 임록수 사모
지극히 평범하다고 여겼던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환히 밝혀줄 ‘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지만, 정작 내 목소리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여기진 못한다.
이 가운데 무려 20년의 긴긴 세월 동안 목소리를 기부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소소한 꿈과 행복을 심어준 이가 있다. 현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낭독봉사자’로 섬기고 있는 임록수 사모(54세·샘솟는교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낭독봉사는 시각자료를 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소설이나 잡지 등 분야를 막론한 다양한 서적을 읽어주는 재능기부를 뜻한다. 임 사모가 처음 낭독봉사를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젊었을적 서울맹학교에서 근무하던 친구의 부탁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생물 문제집 녹음에 참여하면서다.
“사실 그땐 일회성 봉사로 끝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서울맹학교에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한 시각장애인 학생이 제게 오더니 ‘선생님이 읽어준 생물 문제집을 듣고 성적이 올랐다. 감사하다’는 거에요. 그 말이 제게는 큼 감동이었고, 결국 평생 소명으로 이어졌죠.”
자신의 목소리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삶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임 사모는 그때부터 낭독봉사에 책임감을 갖고 진지하게 임했다. 관련 책을 구입해 읽고 발음과 발성, 호흡 등에 대해 독학하며 전문성을 갖춰갔다. 직장일을 병행하면서도 낭독봉사가 있는 날 만큼은 퇴근 시간까지 앞당길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그는 낭독봉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 한 켠에 늘 거룩한 부담감을 안은 채로 10년이 훌쩍 흐른 어느 날, 하나님은 그를 다시 부르셨다. 극심한 감기로 도저히 목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임 사모는 자신도 모르게 덜컥 서원기도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 ‘목소리를 돌려주신다면 그 길로 바로 낭독봉사를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러자 무슨 수를 써도 낫지 않던 목이 기적처럼 깨끗하게 치유됐어요. 그 길로 바로 집 앞에 있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 달려가 낭독봉사를 자원했죠.”
그렇게 지금까지 20년 넘게 일주일에 한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복지관을 찾아 낭독봉사를 이어온 임 사모.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된 삶에도 더 이상 낭독봉사 만큼은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는 임 사모는 “어렸을적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교회였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았고 많은 걸 배웠다”며 “삶에서 드린 모든 기도가 주의 뜻대로 이뤄졌다. 낭독봉사는 이렇듯 인생의 고비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선물”이라고 전했다.
한편, 임 사모는 현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 엄마들을 위한 낭독회도 진행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더빙 지도사로서 방과 후 학교나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는 것 역시 임 사모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스피치 트레이닝 지도사 자격증, 동화책 읽기 지도사 자격증, 감정코칭 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나님의 일일수록 ‘허투루’가 아닌 ‘제대로’ 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임 사모는 오늘도 자신의 목소리가 쓰임받을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주님의 마음을 품고 기쁘게 달려간다.
“저는 늘 낭독봉사를 하기 전 ‘하나님, 오늘도 제가 읽은 문제집을 듣고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그리고는 이따금씩 관련 뉴스가 들려올 때면 저의 작은 헌신이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더라고요. 앞으로도 비록 눈에 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일 하신다면 제 목소리가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