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이 필요한 시대

양병희 목사/영안교회 담임

2022-04-04     양병희 목사
양병희

어느 조직, 공동체나 네 종류의 꾼이 있다. 말꾼, 구경꾼, 방해꾼, 일꾼이다. 교회나 총회, 나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역과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주위에 네 부류의 꾼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는, 말꾼이다. 말은 생명력이 있어 영향력을 끼친다. 용기를 주고 공동체를 이롭게도 할 수 있는 동시에, 상처를 주고 관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특히 말꾼은 조직공동체의 유익이 되지 않는다. 말꾼을 조심해야 한다. 행동은 하지 않고, 말로만 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말이 많다. 달란트의 비유에도 두 달란트로 네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로 열 달란트를 남긴 종들은 말이 필요 없다 주인이 결과를 보면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고도 땅에 묻어놓았다가 가져온 종은 말이 많았다. 게으름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많은 말을 한다. 일꾼은 말이 없고 말꾼은 일감이 없다. (롬12:11)

또한, 구경꾼이다. 구경꾼은 무관심한 자요 방관자이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가정의 무관심이 자녀를 빗나가게 하고, 사회적 무관심이 혼란하고 무질서한 사회를 만든다. 신앙의 무관심은 영적으로 병들게 만든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관심이 중요하다. 총회설립 45주년을 준비하면서 “개혁주의 생명 신학으로 민족과 세계를 살리다” 라는 주제만 생각해도 가슴이 뛰게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공감을 하며 관심을 갖고 동참을 할 때면 신바람이 난다. 그런가 하면 꾸경꾼 같은 무관심한 모습을 볼 때는 힘이 빠지고 안타깝다.

또한, 방해꾼이다. 다른 사람이 봉사하고 헌신할 때 내가 못하면 남을 격려하고 박수 쳐줘야 하는데, 자신이 못 하는 것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오히려 일하는 사람을 비방하고 방해한다. 교회서도 큰일을 할 때 목회자와 협력하며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헌신하는 사람을 비방하며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방해꾼이 많으면 조직의 성장과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 방해꾼을 조심하라. 적이 멀리 있는 것 아니다. 우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성의 패배는 내부의 아간 때문이었다. 

우리는 일꾼이 되자. 어느 공동체든 일꾼을 찾는다. 일꾼은 말이 없고, 말꾼은 일감이 없다. 주의 일을 해도, 억지로 하면 노동이 되고, 즐겁게 하면 사명이 된다. 나는 사명자인가 노동자인가? 손님이 아닌 주인의식으로 헌신하는 일꾼이 필요한 시대이다. 총회 45주년을 준비하며 많은 일꾼을 찾고 있다. 

주여!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충성된 일꾼되게 하소서. (마2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