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선교사들의 오아시스 될게요”
귀국 선교사들을 위한 쉼터 ‘위드엠’
질리도록 부대끼며 사는 한국인들도 외국에서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음식도 낯설고 언어도 다른 그곳에서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이를 만났기 때문일 테다.
코로나19로 인해 귀국한 선교사들의 심정도 비슷하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지 않은 분명한 내 고향인데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은 무언가 낯설다. 선교에 일평생을 바치고 선교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이야기할 것이라곤 선교 이야기뿐이지만 공감해주는 이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고국에서 만난 동료 선교사는 외국에서 한국인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반갑다.
군중 속에 외로운 선교사들을 위한 아늑한 쉼터가 탄생했다. 카페이자 사랑방이며 수다방이기도 한, 선교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공간이 되는 이곳은 ‘위드 엠’(With M)이다. 한인선교사지원재단의 주도로 설립돼 주미영 선교사와 장월방 선교사가 각각 본부장, 운영실장을 맡았다.
선교사 맘은 선교사가 알아요
이유야 어찌됐건 간만에 돌아온 고국이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추정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 귀국한 선교사들의 비율은 40%에 이른다. 하지만 지친 맘에 쉼을 얻고 위로를 받을 만한 공간이 마땅찮다. 파송 교회가 격려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주미영 선교사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선교사라면 목숨 걸고 선교지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국내에 오래 머무르면 부담스러워하는 교회들이 많죠. 선교지를 떠나 국내에 잠깐 있는다는 이유로 후원을 끊는 교회가 있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선교사들이 맘 편히 쉴 곳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에요.”
부모 마음은 부모가 돼봐야 알고 선교사 마음은 선교사가 제일 잘 안다. 이들은 만나기만 해도 서로의 사정을 알고 눈만 마주쳐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이산가족마냥 만나질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선교사들 스스로가 마음을 모았다. 주미영 선교사와 장월방 선교사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공간을 준비했고 11월 1일부터 문을 활짝 열었다.
카페 분위기로 쉼터를 꾸몄지만 이곳의 상징성을 카페라는 말로 담기에는 부족하다. 안식을 얻고 싶은 선교사가 찾아오면 지친 몸과 마음까지 녹이는 따뜻한 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이곳을 향하는 이유는 공짜 음료 때문은 아니다. 선교사들은 이곳에서 치유와 회복이라는 선물을 얻고 간다.
“한 번은 평신도 선교사 한 분이 찾아오셨어요. 자리에 앉으셔서 4시간 동안 이야기를 쏟아 내시더니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라며 밝은 미소와 함께 돌아가셨죠. 위드엠은 그런 곳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선교지의 고생을 서로의 눈만 봐도 알고, 나만 이랬나 싶었는데 얘기를 나누면서 공감을 얻어요. 서로에게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선교사들이 맘 편히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고마운 만큼 선교사들은 마음으로 보답한다. 피차 후원에 사역비의 대부분을 의지하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위드엠 운영에 보태라며 재정을 보낸다. 무료로 얻어 마신 차가 미안해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린 양말에 만 원 한 장을 두고 간 이도 있었다. 이곳을 찾은 선교사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현장에 있던 김바울 선교사는 “그 전에는 선교지에 있다가 국내에 오면 잠깐 볼일을 보고 선교사님도 몇 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와도 정을 둘 곳이 없고 선교 사역을 공유할 곳도 없었다. 그런데 위드엠에 와보니 새가 보금자리를 찾은 느낌”이라며 미소지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이제 위드엠은 위로의 쉼터 그 이상을 꿈꾼다. 위드엠을 선교사들이 기약 없이 국내에 머무는 동안 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장월방 선교사는 이곳을 찾는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의견을 청취하는데 한창이었다.
“선교사님들은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다보니 한국 문화와 정보에 뒤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곳은 한국 트렌드를 익히고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정보 공유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한인선교사지원재단과 연계해 의료지원 혜택도 안내하고 있죠. 2022년부터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선교사들을 위한 온라인 소통과 영상 콘텐츠 제작 교육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모여 선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 보따리가 터져 나온다. 각자 선교지에서 경험과 고충부터 선교계 주요 이슈와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자연스레 이야기는 선교계의 가장 시급한 현안과 과제로 흘러간다. 오늘의 주제는 멤버 케어와 현지 이양에 집중됐다.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천상 선교사들이다.
“한국교회가 파송하는 것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위기관리와 멤버 케어에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선교지에서 입원이라도 할라치면 100~200만 원은 우습게 나갑니다. 선교사에 대한 케어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그 취약점이 많이 드러났죠. 이제 제대로 된 대응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선교사들 스스로도 성찰의 시간을 거쳤다. 교단과 파송 단체에서의 멤버 케어도 중요하지만 선교사도 사역을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흘러나왔다. 주미영 선교사는 그 중 하나로 현지 이양을 꼽았다.
“바울은 한 곳에 머무르며 지도자 대접을 받지 않았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떠나고 세우고 떠나는 것을 반복했어요. 익숙한 곳에서 떠나는 것이 선교입니다. 우리가 선교사로 부름 받을 때 익숙한 한국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이제 선교지가 익숙해졌다면 그곳을 떠날 차례가 된 거죠.”
코로나19는 선교사가 선교지에 당연히 필요하리라는 선입견을 깨뜨렸다. 어쩔 수 없이 국내로 돌아와 남겨진 선교지를 걱정했지만 현지인 스스로 교회 공동체와 학교 사역 등을 무리 없이 꾸려나가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게 됐다. 주 선교사는 전환이 필요한 지금 시점에 위드엠이 휴게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하나님이 코로나19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교단과 단체에 관계없이 선교사라면 누구나 와서 전환을 고민하고 가능성을 발견하고 위로와 격려를 얻어 돌아갔으면 해요. 위드엠이라는 이름에 담긴 ‘위드 미셔너리’, ‘위드 메시아’라는 의미처럼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하며 선교사들과 함께 걷는 쉼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