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협 실행위, 이라크파병 찬반갈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김순권목사, 이하 교회협)가 이라크 파병 관련 성명서 채택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시국문제를 놓고 이렇게 위원들 간에 첨예한 대립을 불사하며 논쟁과 언쟁을 반복하는 난상토론을 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실행위원회는 장시간 논란 끝에 교회협 회장과 각 교단 대표로 처리위원을 선임해서 성명서 자구수정 등을 골자로 하는 업무를 위임키로 했으나 이라크 파병반대 성명이 실제로 발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성명서 자체가 파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지난달 22일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열린 기독교회관 강당은 교회협 공식회의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협의회 산하 교회와사회위원회(위원장:인명진목사)가 상정한 ‘이라크 파병반대’성명서발표 결의를 놓고 찬성과 반대입장이 한치의 양보없이 설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연합운동의 지도자격인 김상근목사(기장측)와 김순권목사(통합 총회장)가 쌍방 비하발언을 문제삼아 격돌, 회의가 도중에 중단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회장 김순권목사가, 발표반대 입장을 설명하는 박춘화목사(창천감리교회)의 발언 직후 공식적으로 “이번 회의에서 성명서 발표 결정을 안하려는 것이 내 생각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시작됐다. 이 말을 들은 오충일목사(군산복음교회, 노동일보 사장)가 “의장은 회의만을 주재해야 한다”며 유감을 나타낸데 이어 김상근목사도 “교회협 전통은 시국관련 입장을 표명해온 것인데 한미동맹이라는 이해관계 때문에 옳은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교회답지 않은 것”이라고 발표를 주장했다.
여기에 김순권목사가 “의장인 내가 발표여부를 결정한다”며 “오늘 (파병성명)결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반대측의 성토를 시작으로 쌍방간에 고성이 오가며 회의가 일시 중단됐다. 30여분간의 설전 끝에 양측은 파병반대 성명서 발표 주최 명단에서 회원 7개교단 총회장의 이름을 삭제하고 문구를 수정하는 등의 절차를 교단대표에 위임하기로 어렵게 합의했다. 교회협 실행위원들은 이날 회의를 끝내고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빠른 시일 안에 교회협의 틀을 바꿀 대대적인 수술(구조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성명서발표 반대입장을 주장한 박춘화목사는 “교계를 비롯해서 일반인들조차 찬반으로 양분된 이라크 파병문제를 교회가 꼭 어느 한 편을 들어야만 하느냐”고 질문하며 “우리 교회도 이 문제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고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일텐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순복음측인 김정명목사(직전총회장)는 “교회는 이해관계에 편승해서는 안된다는 기본적인 마음이 필요하다”면서 “이해관계가 판치는 국제관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는 옳고 그름의 자리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며 파병반대 성명을 지지했다.
양측의 입장차이를 결국 좁히지 못하고 어정쩡한 결정을 내린 교회협은, 이번 난상토론을 계기로 실무진의 리더십 개발과 회원 교단의 일치운동에 대한 이해증진 등 그동안 뒤로 미룬 과제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교단의 입장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에는 교회협 실무진의 조율능력은 물론 교단의 타교단에 대한 존중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윤영호기자(yyho@uc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