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되신 예수님처럼… 어둠 속의 시각장애인 섬깁니다”
시각장애인의 희망이 되는 곳,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코로나19 시대 가장 큰 어려움은 소통, 사회의 일원 되도록 지원 5개 분야 직업 훈련 통해 정착 도와… “교회가 지지망 됐으면”
상상해보라. 엘리베이터에 어떤 숫자도 글자도 없이 덩그러니 버튼만 남아있다면 어떨까. 심지어 그 버튼을 찾기조차 힘들다면.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리라. 편의를 위해 이용하려 했던 엘리베이터에서 왜 이런 수고를 들여야 하냐며 짜증을 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을 실제로 겪은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붙여놓은 항균 필름 때문에 점자를 인식하지 못한 시각장애인들이 그랬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방패가 누군가에게는 넘지 못할 벽이 됐다. 안전망이라고 생각했던 필름이 시각장애인의 유리벽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위해 움직인 곳도 있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김미경)은 향균 필름 위에 점자 스티커를 붙이자는 운동을 벌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각장애인이 있는 곳이라면 실로암은 어디든 달려간다.
산업화 시대 피어난 작은 꽃
산업화를 위해 한마음으로 땀을 흘렸던 1960년대. 모두들 잘사는 법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지만 배려하는 법을 고민하는 이는 많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그 자신도 시각장애인이었던 김선태 목사의 시선은 달랐다. 1969년부터 점자 성경 보급을 시작했고 1972년엔 예장 통합 교단 내에 맹인선교부가 만들어졌다. 시각장애인들의 빛, 실로암의 시작이었다.
봉천 지하철역 바로 옆에 위치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한 집사 부부의 헌신으로 세워졌다. 환갑을 맞아 여행을 떠났던 김능원 집사 부부는 안타깝게도 사고로 여행지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갑작스런 사고로 낙망에 빠질 만도 했건만 자식들은 통 큰 결단을 내렸다. 평소 시각장애인 선교에 힘쓰던 부모님의 뜻을 이어받아 낙성대 인근 땅을 실로암에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김미경 관장은 “후원받은 대지에 김선태 목사님이 받은 후원을 모아 건물을 지었다. 처음엔 임대업으로 수익을 내 복지 선교 사역에 활용하려고 했지만 기증자의 뜻을 잇고자 그 자리에서 복지관을 운영하기로 했다. 건물을 리모델링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1998년부터 복지관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세상와의 연결고리, 소통
건물 엘리베이터에 붙은 항균 필름처럼 비장애인들은 미처 느끼지 못한 곳에서 시각 장애인들이 벽을 느끼는 경우는 생각보다 종종 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무인단말기, 키오스크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시대가 되면서 사람과 사람이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키오스크가 더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키오스크 앞에 서면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말아요. 키오스크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어요. 그래서 실로암에서는 키오스크를 보다 원활히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거나 외국에서 만들어진 시각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갈 곳을 잃은 손, 아무것도 주문하지 못한 채 벽과 같은 기계 앞에 멍하니 서야 하는 음식점처럼 코로나19 시대 시각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상징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단절이다. 그래서 실로암복지관은 의사소통의 회복을 복지 사업의 가장 우선순위에 둔다. 의사소통은 시각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오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을 특수시설이라는 이름의 섬에다 몰아넣고 격리했습니다. 비장애인들의 공간과 장애인들의 공간을 분리하고는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양 여겼죠. 하지만 이제는 ‘탈 시설’이 대세가 되고 있어요. 최중증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죠.”
이를 위해 실로암복지관에서는 다양한 기관과 프로그램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소통을 넘어 사회에 정착하고 당당한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실로암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는 시청각장애인의 전인적 복지를 위해 의사소통기술 개발과 교육에 힘쓴다. 동시에 시청각장애인 스스로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보행훈련과 이동지원, 맞춤형 서비스도 마련해놨다. 사회로부터 고립돼있는 시청각장애인을 찾아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활동을 지원해 재활과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센터의 역할이다.
실로암이 운영하는 설리번학습지원센터에서는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발달장애 등 다른 장애를 동반한 중복장애인들의 학습을 돕는다. 헬렌켈러를 지도한 앤 설리번 선생의 이름을 딴 이곳에서는 유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학습지원과 가족지원 등 장애의 정도와 특성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시각장애인은 발달장애인과는 처한 환경이 조금 다르다. 그들은 가장이 되어 자리를 잡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한다. 때문에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다름 아닌 직업이다. 실로암복지관이 시각장애인들의 소통을 돕고 교육하는 이유도 이들이 직업을 갖고 정착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직업훈련 공과를 만들었어요. 종류도 벌써 5가지나 됩니다. 바리스타와 제빵사, 전통의 직업인 안마사 등 여러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훈련에서 그치지 않고 직업재활센터를 통해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구직까지 연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탄탄한 훈련을 거쳐 실력을 갖췄어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이런 안타까움에 실로암복지관은 직접 일자리를 마련하고 나섰다. 복지관 1층 공간을 비워 카페를 만들었고 직업훈련을 받은 시각장애인을 바리스타로 고용했다. 그것이 벌써 13년 전. 그 바리스타는 장애인 바리스타 1호 사례로 기록됐다. 이를 시작으로 카페는 2호점, 3호점을 내며 확장됐다.
실로암복지관이 또 하나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나눔이다. 복지관에서 나눔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며 갸우뚱하겠지만 여기서 나눔은 대상이 조금 다르다. 실로암복지관의 나눔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간다.
“우리나라의 복지 사업은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의 복지 수준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발전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보다 복지 수준이 열악한 개발도상국 장애인 지원 사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탄자니아, 우간다, 베트남, 미얀마 등 14개 나라에 시각장애인 교육과 직업지원 노하우를 전수했어요. 몽골과 인도에는 카페를 차려줬고 그 수익금은 현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죠. 점자 인쇄 시설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위해 교과서 점자 번역과 인쇄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울타리 되길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현장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비율은 약 10% 정도로 제한됐다. 하지만 그 10%에 장애인들이 포함되기란 쉽지 않다. 사회 그 어느 곳보다 장애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발걸음을 함께해야 할 교회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요즘 신축하는 교회들은 법 때문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짓지 않으면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요. 하지만 법적인 부분이 해소됐다는 것이 곧 장애인들에 대한 신앙의 포용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에서 장애인을 이방인 취급할 것이 아니라 함께 걷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생각하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한 명의 시각장애인이 지역에 정착하려면 그 지역의 커뮤니티가 그를 도와주는 그물망이 돼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새로운 지역에 이사 왔을 때 마을의 마트와 세탁소에 데려가 소개하고 배려를 부탁하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실로암복지관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지만 이런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관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교회다. 지역의 소외계층을 교회가 돌보기 시작할 때 교회의 울타리를 낮추고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게 되리라는 것이 김미경 관장의 생각이다.
“14개 국가에 가서 장애인 사역을 지원할 때도 선교라는 깃발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사랑으로 시각장애인을 섬기려고 힘쓰죠. 그러면 자연스레 자신들을 돕는 ‘실로암’이라는 이름에 대해 궁금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해요. 실로암복지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달되고 시각장애인의 꿈이 실현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기도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