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아들의 죽음
이병후 목사 / 가양제일교회 담임
며칠 전 동네 은행에서 우리 교회 성도 어르신을 만났다. 남편께서 요즈음 교회 출석을 하고 있지 않고 있던 때라 반갑게 인사하고 근황을 물었다. 그랬더니 부인 집사님께서 그동안 말을 못했노라며, 남편이 많이 아팠었다고 말씀하셨다. 들어보니 지난해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 입원도 하셨었고 항암치료도 하셨다고 하시기에 깜짝 놀라 위로를 해드렸다. 며칠 후 심방을 통해 암 투병 소식에 대해 위로를 해드렸는데 지난해 더 큰 아픔이 있었다면서 40대 후반의 둘째 아들의 사망 소식을 꺼내 놓으셨다.
아들은 평소처럼 자가용을 운전하며 직장으로 출근하다가 신호대기 중에 심장마비로 심정지가 와서 쓰러졌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긴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며칠 만에 숨을 거두었다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노부부는 아들을 보내고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사는 맛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했다.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것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고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예로부터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부모님께 가장 크게 불효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부모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갖게 된다. 세상에 누가 부모보다 먼저 죽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모든 인생의 기한은 사람이 스스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크나큰 아픔일 것이다.
성경에도 이런 상황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론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제사장으로서 첫 번째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명하지 않는 불로 분향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두 사람을 삼키매 여호와 앞에서 죽고 말았다. 순식간에 두 아들을 잃고 난 아론의 마음이 어땠을까?
다윗도 많은 자녀들이 있었다. 그중에 아픈 손가락 같은 아들은 압살롬이다. 압살롬은 반역하여 다윗을 축출하였으나 다윗이 다시 왕권을 되찾을 때 압살롬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최후의 일전을 앞둔 전쟁 상황에서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신신 당부했다. 만일 승리하게 되면 압살롬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요압이 다윗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처형했다.
이 소식을 듣고 부르짖었던 아버지 다윗은 절규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 갈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나는 슬픔을 당한 노부부의 사연을 들으면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꼈다. 독생자 예수님을 사랑하셨지만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실 때 죽어 고통 속에 부르시던 아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얼마나 아파하셨을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6)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죽어가는 아들을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지만 아들을 버려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의 죽음 후에 3일 만에 다시 살려주신 부활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요 참된 위로다. 오늘도 목회자로서 슬픔을 당한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