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지키듯 평화스러울 때 교회 분쟁을 대비해야 한다”

‘우리 교회 정관, 어떻게 만들까’ ① 도대체 교회 정관이 왜 필요한가? 교회 갈등의 세상 법정 비화, 씻을 수 없는 상처 정관 없는 공백상태, 국가법·민법이 메우게 된다

2021-05-18     서헌제 교수(한국교회법학회장)

작년 10월 부목사와 전도사를 노동자로 분류하는 법원 판결이 나온 데 이어, 최근에는 지휘자와 반주자 등 교회 봉사자까지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교인의 자격 등을 교회 정관에 규정해두었다면, 세상 법정에서 판단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교회 정관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교회가 많다. 일단 신앙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불필요한 소송비용 지출, 교회의 위상 추락, 무엇보다 성도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만다. 잘 정비된 정관만 있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종교인 과세가 시행된 후 정관은 더욱 중요해졌다. 

중앙대학교 법학과 명예교수이자 한국교회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헌제 교수는 교회의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정관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중앙대 대학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의 심정에서도 정관 제정을 강권할 수밖에 없다. 2019년 ‘한국교회표준정관’ 매뉴얼 발간도 그러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본지는 사회법 소송으로 비화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반드시 교회 정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 교회 정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오랫동안 교회와 법을 연구해온 서헌제 교수의 특별기고를 연재한다.

교회와 교인을 해치는 교회분쟁 

서헌제

삼십여년 전 필자가 부산대 교수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S교회에서 주일학교 반사로 섬기던 때의 일이다. 담임목사님이 새벽기도 시간에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후 교회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교인 중 일부는 목사님이 남겨둔 비디오 설교 테이프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후임 목사님을 세워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서 분쟁이 생긴 것이다. 예배 때마다 양측의 충돌이 이어졌고 그 와중에서 상대방을 향해, ‘마귀, 적그리스도’ 등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쏟아내는 한편 폭력행위도 서슴지 않으면서 평소 그렇게 양순하고 거룩하게 보였던 교인들 속에 일단 분쟁이 생기면 이런 무서운 측면이 드러나는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  

교회사에서 보면 교회 분쟁을 통해 올바른 교리와 진리가 보수되었던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국내에서 벌어지는 교회 분쟁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회를 서로 차지하려는 세속적 동기에서 유발된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한다. 그것도 ‘법대로 하자’면서 교회 분쟁을 교회 내에서 신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불신법정까지 끌고 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림은 물론이고 교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교회 분쟁을 가이사의 법정(국가 사법기관)에 가지고 가면 잘 해결되는가? 필자가 지난 50여년 간 우리나라 법원에 제기된 교회 분쟁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 대답은 ‘아니오’ 이다. 그 이유는 재판에 관여하는 법관이나 검사들이 세속법의 전문가일지는 모르나 교회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K교회 분쟁 

교회 분쟁의 대표적 사례라면 K교회 분쟁을 꼽을 수 있다. 오랫동안 교회를 개척해서 2000년대 초반 교인 만 명 이상의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목사님이 원로목사로 물러나고 담임목사가 새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 간에 생긴 사소한 오해와 불신이 교회가 양쪽으로 나뉘게 했다. 10여 년에 걸쳐 무려 60여건의 소송을 주고받는 대형 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법원은 일부 교인이 기존 교단을 탈퇴하여 교회 분열이 생기면 교회 재산은 3분의 2 이상 다수 교인들이 차지한다는 세속법(민법)의 규정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해서 판결하였다. 

그런데 누가 교회의 교인인지를 정하는 교회정관도 불분명하고 또 교인 명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현실에서 교단탈퇴 결의가 ‘3분의 2 이상 다수 교인’의 동의를 얻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 다수 교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번번이 소송에서 지는 이유이다. 더구나 법원은 교단 탈퇴와 교회 탈퇴는 별개라는 전제하에 비록 교단 탈퇴결의에 가담한 교인이라도 여전히 K교회 교인 지위를 유지한다는 모호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양측이 계속 소송전을 이어가게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교회내

교회 분쟁의 예방책으로서 교회정관

K교회 사건을 반추해보면 교회 분쟁을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교회에 분쟁이 생기면 평화적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신앙적 방법으로 해결은 더 어렵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양측이 모두 자기편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 분쟁은 세속 분쟁보다 훨씬 더 과격하다. 결국 분쟁이 생기기 전 평화스러울 때 분쟁에 대비한 해결기준인 교회정관을 마련하는 것이 답이다. 우리 몸의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 하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K교회 사건에서 보면 교단탈퇴를 결의한 교인총회(공동의회)결의의 유효성을 담보할 기준, 가령 교인의 정의, 교회명부의 관리와 비치, 교인총회 소집요건, 교인총회결의 요건 등을 교회정관에 명확하게 정해놓았으면 쓸데없는 소송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 많은 소송에 낭비된 교인들의 헌금만 해도 어마어마한 액수로 추정된다.  

평화로울 때 교회정관 마련해야 

그런데 평화로운 교회에서 미리 분쟁을 대비해서 교회정관을 마련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 교회 현실이다. 자칫 담임목사에 대한 불신으로 오해받거나 괜한 말썽의 소지가 되지 않나 하는 눈총을 받기 일쑤이다. 또 교회정관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도 그 내용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은행담보 서류나 고유번호증 발급서류의 하나로서 몇몇 사람들이 급조해서 만들어 놓은 것도 많다. 

교회 분쟁이 생기면 교회 정관이 없더라도 교단총회 헌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개교회와 교단총회는 별개의 단체로 취급될 뿐 아니라 총회헌법은 개교회의 사정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또 특정교단에 소속하지 않은 교회의 경우에는 정관이 없으면 법이 없는 공백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국가법인 민법이 그 공백을 메우게 되며 교회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민법에 의하면 사단 구성원들은 언제든지 총회결의로 대표자를 해임할 수 있는데, 이를 교회에 적용하면 교인들이 총회를 개최하여 교회 대표자인 담임목사를 해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아가 종교인과세의 시행에 따라 과세대상인 사례비와 비과세대상인 종교활동비 등의 구분, 고유번호증 발급, 구분기장·회계 등을 위해서 정관 제정이 필요하다. 소득세법이 교회 정관을 기준으로 과세대상과 비과세대상 및 세무조사의 범위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배에서 법의 지배로 

이제까지 한국교회의 질서는 대부분 담임목사의 영적 카리스마에 의해 유지해 왔다. 따라서 교회 정관이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은 코에 호흡이 있는 사람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한 때 ‘하나님의 사자’로 추앙받던 훌륭한 목사님들이 욕심을 버리지 못해 결국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추락한 예가 어디 한 둘인가 ?  

이제는 사람이 아닌 교회 법과 교회 정관이 교회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인 것이다. 시내산 언약의 선포로부터 이스라엘 믿음공동체가 시작되었듯이 성경 말씀을 정점으로 하는 교회 법과 교회 정관의 마련이야말로 교회를 믿음공동체로 굳건히 세우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