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고용시장에 ‘더 아픈 청춘들’…“교회가 공론장 만들어야”
성경적 세계관이 흔들린다 - ④크리스천 청년들의 직업관
고용 불안정성 커진 청년들 69.1%, 취업 스트레스
모든 일터는 사역의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장소’
‘심센터’, 기독 실업인과 청년들 공유하는 플랫폼
김민수 씨(28)는 2~3년의 구직기간을 거쳤지만 원하는 업계에서 정직원으로 입사하는데 실패했다. 마침 1년 계약자리가 나서 계약직으로 취직한 그는 “처음에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직장이라면 어디라도 감지덕지한 마음”이라며, “친구들 대다수가 취직했지만, 나같이 계속 구직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어디에도 마음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요즘 청년들에게는 “건국 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고 있다. 열심히 살면 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약속할 수 있었던 과거 세대와 다른 현실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실업자는 157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1.6%p 상승해 5.7%를 나타냈으며, 청년 실업률은 다른 연령대보다 2배나 높은 9.5%로 치솟았다.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비정규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 등이 늘어나고 고용의 질이 악화되면서 고용 불안정성도 높아지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19라는 특수 재난까지 덮쳐 이 시대 청년들은 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취업전쟁,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
실천신대 21세기교회연구소(소장:정재영)가 최근 전국 성인남녀(19세부터 39세 이하) 크리스천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점’ 1순위가 ‘일자리/취업’문제(19.3%)라고 답했다. ‘요즘 생활 관심사’에 대해서도 가장 많은 수인 22.7%가 ‘경제적 여유’라고 답했으며, 16.7%가 ‘안정적 일자리/취업’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청년세대’가 향후 5년간 일자리 감소, 신규 채용 위축 등으로 큰 피해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렇듯 불안정한 청년 고용시장은 노동시장 진입을 늦추고 결혼과 출산을 미뤄 생애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 헨리 지루(Henry A. Giroux)는 이런 청년들을 가리켜 ‘1회용 청년’(disposable youth)이라고 칭했다. 지금 사회가 청년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청춘이 일회용으로 전락하거나 적어도 잉여처럼 취급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의 위기 속에서 기독 청년들이 겪는 정신적 어려움도 큰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미래사역연구소가 2019년 ‘크리스천 대학생 취업의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졸업을 앞둔 크리스천 69.1%는 취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교회로부터 취업 관련 도움을 받았다는 청년은 8.7%에 불과했다.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현 청년세대는 더욱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몰두하고 취업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성석환 교수(장신대 기독교와문화)는 “현 청년들은 학자금을 받아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높은 실업률로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으로 생계를 잇고 근근이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연애나 결혼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사회적 곤경에 처한 기독 청년들도 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을 향한 교회의 도움은 절실하지만 교회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성 교수는 “기독 청년들은 부조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순응해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신앙을 의지한다”면서 “개인화된 신앙으로 변질돼 가고 있는 가운데 교회가 예언자적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일터에 ‘하나님의 사명’ 있어
직장 속에서도 크리스천으로서 소명의식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최예나 씨(가명·26)는 최근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기업에 취직했지만, 직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전했다. 그는 “대학생 때는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며 민족 복음화와 선교를 꿈꿨지만, 직장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고, 선데이 크리스천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교회에서 복음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막상 직장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은 없었다는 것이다.
직장의 목적이 하나님의 사명을 향하기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청년들도 많다. 취준생 박지훈 청년(가명·25) “구직의 가장 우선순위는 연봉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며, “주일성수를 할 수 있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냐는 후순위에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주변에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모범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멘토와 같은 선배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직장생활을 하는데 멘토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일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청년을 위해 교회는 교회의 일만이 하나님이 일이며 직업은 생계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루터를 위시한 종교개혁가들은 “일상의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관련이 있으며, 직업 노동을 포함한 모든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 신학자인 팀 켈러(Tim Keller) 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일의 종류가 유급이든, 무보수이든 그곳이 학교, 회사, 공장 혹은 재택근무를 막론하고 모든 일터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사역의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장소’”라고 밝혔다.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남다른 태도와 따뜻함, 좋은 평판, 용서와 화해, 이타적인 태도 등을 갖출 때 일터에도 변화가 찾아오며, 크리스천 청년들이 세상 속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고민 가진 청년 ‘소그룹’ 필요해
청년세대를 위한 교회의 역할로 라영환 교수(총신대)는 “젊은이들의 질문을 듣고, 교회가 그에 대한 대답을 성경을 기반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교회가 세상과의 괴리감을 갖는 청년들의 고민 앞에 성경적 세계관에 기반한 답을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교회는 청년층이 미래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에서 교육을 잘 받으면 건강한 그리스도인과 동시에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 시대에도 복음만이 답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석환 교수는 “교회가 기독 청년들에게 공적 신앙을 실천하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에게 스스로가 문제를 공유하며 나누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먼저 크리스천 청년들이 일터에서 제자로서 공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이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고민을 가진 크리스천 청년들이 공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소그룹을 교회가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면에서 크리스천 사회적 기업가를 육성하는 ‘심(SEAM)센터’는 좋은 모델이 된다. 심센터는 “기독교 가치를 품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목적으로 2014년 설립됐다. 공유 사무실과 주택이 결합된 복합공간으로 사회적 기업가나 사업 멘토들과 서로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얻고 전문성을 쌓는다.
센터장 도현명 대표(임팩트스퀘어)는 “사회적 기업가를 꿈꾸는 기독 청년들에게 같은 소명을 가진 동역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며, “하나님께 받은 긍휼의 마음을 세상에 구현하는 기독 청년 사회적 기업가를 키우고, 성공사례를 배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도 대표는 “더욱 많은 기독 실업인들과 청년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적 기업가들이 함께 교제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열 계획”이라며, “이들에게 심센터가 좋은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