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편지들 바디안에게, 1529년(2)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120
1529년 마부르크회담
츠빙글리는 성 갈렌의 종교개혁자 동료 바디안에게 1529년 10월 1일부터 5일까지 행해졌던 독일 마부르크 종교담화에 관한 소식을 전하러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처음으로 루터파와 개혁파가 함께하여 성찬에 관하여 대화를 한 역사적 마부르크 종교담화는 헤센의 성주 필립의 제안으로 성사되었고, 필립의 궁전에서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회의 역시 이곳에서 이뤄졌다. 바디안은 회담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매우 궁금했으며 긴장되기까지 했다.
츠빙글리는 마부르크 논쟁을 사실적으로 전했는데, 특히 멜란히톤과 루터의 태도에 대한 묘사는 망설임이 없다. 뉘른베르크 종교개혁자로서 역시 회담에 임했던 안드레아스 오시안더(Andreas Osiander)의 불친절한 보고와는 대조를 이룬다. 1529년 10월 3일 결정한 15조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양편이 자기 편의 승리로 파악했다는 점은 특이하다. 스위스 쪽 사람들은 언제나 루터를 적대자로 여기지 않았지만, 이와는 다르게 루터는 교회가 분리될 수 있는 심각한 차이로 생각했다. 회담 후에도 스위스는 실지로 루터 종교개혁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1543/44년까지 노력을 기울였다. 츠빙글리가 정치적 동맹을 위해 성주 필립과 회담하기 위해 헤센을 방문하였는데, 신앙고백의 크고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가 함께 반 합스부르크 동맹을 추구한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생생한 회담 풍경
츠빙글리가 성 갈렌의 종교개혁자 바디안에게 편지를 보낸 시점은 1529년 10월 20일이다. 가장 생생한 기억으로 마부르크 담화에 대해 전하는 첫 소식이라 하겠다. “주의 은혜와 평화를!”이라는 간단한 안부는 츠빙글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감당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며, 츠빙글리가 조금은 일 중심적이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츠빙글리는 용건으로 바로 들어간다. “당신이 긴장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간단히 전하려 합니다.” 츠빙글리는 1529년 10월 1일부터 5일까지 독일 마부르크에서 루터, 츠빙글리, 멜란히톤, 외콜람파드 외에 마르틴 부쳐(Martin Bucer), 아콤 슈투엄(Jakob Sturm), 카스파 헤디오(Caspar Hedio), 유스투스 요나스(Justus Jonas der Ältere), 안드레아스 오시안더(Andreas Osiander), 요한네스 브렌츠(Johannes Brenz), 슈테판 아그리콜라(Stephan Agricola)가 참석하여 그들 사이에 벌어진 종교담화에 관한 소식을 기다리는 바디안에게 넉넉한 소식을 전한다.
특히 성찬에 관한 논쟁은 이틀 동안 서로 성경적 근거를 갖고 이루어졌는데, 루터, 츠빙글리, 외콜람파드가 이에 주로 참여하였다. 결실 없는 중재자 역할을 한 마르틴 부처는 츠빙글리의 편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총 15개 조항 중 14개는 합의를 보았지만, 성찬에 관한 15번 조항은 차이를 보이며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개혁교회의 성찬이해와 구별되게 성찬에 주님이 실지로 임한다는 루터의 공재론(Realpraesenz)이 특히 그랬다. 그렇지만 양편은 로마교회의 화체설을 반대했으며, 일반 신도들이 직접 성찬의 잔을 잡는 것에는 함께 동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