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편지들(4) - 미코니우스에게 -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101

2020-07-28     주도홍 교수

루터 파문
츠빙글리는 교황이 루터에게 파문을 내릴 것을 예상하면서, 그렇게 되면 독일인들은 그 교황의 파문을 업신여길 뿐 아니라, 동시에 교황을 조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츠빙글리는 자신에게도 닥칠 환난을 예상하며, 과거 진리를 위해 어려움을 당했던 두 사람을 교회 역사에서 소환한다. 힐라리우스(Hilarius von Poitiers)와 루치우스 1세(Lucius I)인데, 두 사람 다 자리에서 쫓겨나 유배당했다. “매우 학식이 많고 거룩한 사람” 힐라리우스는 서방교회의 니케아신조를 따라 정통을 대변했던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A.D. 356년 소아시아 지방으로 몇 년간 추방당했으며, 루치우스는 로마의 주교 자리에서 물러나 A.D. 253년 잠시 유배를 당했지만, 다시 로마의 주교로 명예롭게 복귀하였다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려는 마음은 없지만, 그들을 기억하며 자신 스스로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여기서 츠빙글리는 루터를 다시 불러온다. 

“지금 나는 거의 아무것도 더는 루터에 관해 읽고 있지 않지만, 이전에 내가 읽은 그의 것들은 내 입장으로 볼 때 복음적 교리와 일치한다. 아마도 미코니우스 너도 기억할 건데, 내가 루터를 추천했던 유일한 근거는, 루터가 순수하게 그러한 기본적 증인들과 더불어 자신의 주장들을 더욱 견고히 한다는 사실이다.”             
     
요약
편지는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고뇌와 위기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교회개혁을 위한  복음의 진리를 따라갈 것임을 제시한다. 곧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의 뜨거운 소명을 생생히 보여주는데, 종교개혁으로의 소명은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을 보낸 이유라고 확신한다. 그러기에 그만큼 츠빙글리의 목숨을 건 사명감은 투철하게 그려진다. 츠빙글리는 중세교회의 부패가 영적 무지에 근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교회의 타락이 영적 지성을 폭력으로 짓밟아서 나타난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를 인문주의의 각성으로 새롭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시 지성적 교회로 바꾸려는 것은 아니다. 중세교회의 스콜라주의가 이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츠빙글리가 추구하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선 교회이다. 츠빙글리가 루터를 소명의 종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루터가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를 새롭게 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루터처럼 파문을 당할 수 있는 좁고 어려운 길에 결코 많은 사람이 동참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이상 은밀하게 다시 숨겨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여, 그 보물을 살 것을 분명히 한다. 이 길에 신실한 미코니우스가 함께할 것을 독려한다. 목숨까지를 내놓아야 하는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편지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 이뤄져야 했는지, 왜 교회가 부패했는지, 츠빙글리에게 종교개혁의 소명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종교개혁이 어디에 근거를 두었으며,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함께하는 동역의 소중함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