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지역 마지막 복음 전파는 노인들에게 달려있습니다”

탐방 // 청정 지역 주암 복음화에 앞장서는 ‘주암햇빛교회’

2020-07-21     이석훈

1년 쉬러 주암 내려갔다가 교회 개척 후 건축에 요양시설 운영까지 진행

종가집 종손 전도와 재가복지로 지역에 소문… 어르신들이 교회 입소문

행복한 목회로 하나님이 기뻐하심에 좌절하지 않고 기쁨으로 섬김의 본

 

전형적인

코로나19가 우리나라와 온 지구촌을 힘들게 하고 있는 가운데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는 바로 농어촌 교회이다. 가뜩이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노인들로 구성되고 헌금 액수도 적은 상황에서 코로나 여파는 그러한 노인들마저 교회로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정권

그러한 가운데서도 꾸준히 지역 어르신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주암햇빛교회(담임:정권 목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나마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농어촌 교회의 사명이자 역할임을 확신하고 있다.

 

종가집 종손의 출석으로 주목

도농 복합지역인 전남 순천시 주암면 고산 환곡길 39에 자리하고 있는 주암햇빛교회는 15년간 안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큰 어려움을 당해 힘들어 하다가 안식처를 찾아 내려온 정권 목사가 평소 은혜받고 존경하던 고훈 목사님의 권유로 5년만 살고 올라가려고 했었던 것이 지금까지 주암에 머물게 됐다.

전화위복이 돼 여수에서 재활용 사업을 하면서 큰 돈을 벌게 된 정권 목사는 세상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동안 꼼짝 못하고 성령에 붙들림받아 두손 들고 낯선땅 주암에서 교회를 시작했다. 개척 1년 뒤인 2005년 12월, 2년 만에 대지 300평에 건평 100평으로 아름답게 교회를 건축한 주암햇빛교회는 처음은 순탄하게 4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젊은 사람이 없는 나이든 60대 이상의 고령 인구가 농사를 업으로 하며 남자보다 여자 인구가 더 많은 지역으로, 교회 주변에 약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16년이 지난 지금은 주암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 졌다.

2005년

주암햇빛교회가 유명세를 탄 것은 교회 개척 후 2010년 시작한 재가노인복지의 역할과 함께 지역의 내로라하는 종가집 장손이 교회를 출석하면서 변화된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도박과 알콜중독에 빠져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싸움을 하던 종가집 종손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변화된 부인의 모습을 보고 ‘교회가 어떤 곳이길래 사람을 저리 변화시키는가’ 궁금해서 ‘그렇다면 나도 한번 다녀봐야겠다’ 하고는 맨 정신이 아닌 채 술을 먹고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님께서 붙들어 순간적으로 변화시켜 주었다.

교회에 나오면서 좋아하던 술과 도박을 끊고 1년 뒤에는 가장 큰 문중제사를 다 없애버린 정매용 집사의 변화된 모습에 ‘사람이 어떻게 저리 180도로 바뀔 수가 있는가’ 하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던 정 집사는 지난해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부인 권사는 3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침 일찍부터 농사일로 바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권 목사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재가복지’였다. 사회복지자 자격증이 있었기에 요양보호사 3명만 확보하고 사무실만 있으면 재가복지를 할 수 있었기에 바로 시작해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었다. 적어도 3시간 동안 어르신들을 찾아가 정성껏 섬김으로써 교회가 좋은 일을 한다는 입소문이 났다.

 

어르신 섬김사역이 마지막 보루

재가노인복지를 통해 마을 어르신들을 접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주암햇빛교회는 2013년 주야간 보호센터와 노인복지 요양시설인 주암햇빛마을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의 노인 돌봄과 전도사역에 힘쓰고 있다.

정권 목사의 사모인 박순옥 목사가 원장으로 있는 주암햇빛마을은 2천여 평의 대지에 아담하게 건축하여 주간보호센터에 7명이, 요양시설에 9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아들과 며느리도 함께 봉사자로 섬기고 있다.

농촌 교회의 특성상 주로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가는 60대 이상의 고령자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며 살아온 삶을 일반 전도로는 쉽게 교회로 인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전도를 한다 해도 교육을 통해 온전한 일꾼으로 세우기까지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았다.

재가노인복지와 햇빛마을을 운영하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됐으며, 직원들이 정성을 다해 섬긴 결과 이곳을 찾은 노인들이 교회를 좋게 소문 내 100여 명의 성도로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암햇빛교회가

“흔히들 농촌 교회는 도시 교회의 모판이다. 또는 어머니 교회다 라고 말을 합니다. 현시대를 보면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초등학교가 통폐합되고 폐교가 늘어가는 속에서 고령의 노인들로 점점 교인들이 줄어들고 빈 집이 늘어가는 현실입니다. 목회의 과정은 어려웠지만 선교사업으로 시작한 재가노인복지와 요양시설은 그야말로 이 시대 농촌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귀한 터전이 된 것입니다.”

비록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청년이 없는 60대가 주를 이루는 교회이지만, 교회가 건축할 때부터 성도들과 함께 자비량으로 부채 없이 시작하여 적은 숫자의 농촌 교회이지만 자립하여 잘 유지해 오고 있음을 정권 목사는 자랑하고 있다.

교회의 성장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개척 후 2년 만에 교회를 건축하고 1년 뒤쯤 100여 명 정도로 성장했을 때 교회정관을 개혁적으로 만들었던 젊은사람들이 일명 쿠테타를 일으켜 담임목사를 내쫓으려고 했다. 결국에는 세상 법정으로까지 가서 해결이 됐지만 그 때의 일을 정 목사는 목회생활 중 가장 부끄러운 순간으로 여기고 있다.

판사가 목사에게 “어떻게 성도를 교육했기에 세상법정에 고소를 합니까”. 이어 고소한 성도에게는 “어떤 신앙을 가졌길래 교회와 목사를 상대로 고소를 합니까”. 결국 판사와 검사 등 법원에서 7~8명이 교회를 찾아와 실사를 하고 나서 한 달 후 고소인이 패소하고 사건이 1년 만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교회의 고소사건은 어디든 마찬가지듯이 결코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을 뿐이었다. 일꾼 역할을 하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성도 중 절반 가까이가 교회를 나갔으며, 그 충격으로 정 목사는 목회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거기에다가 먼저 자리를 잡았던 교회들로부터도 공격을 받는 어려움까지 있었지만 곽성현 증경총회장이 항상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힘이 돼 주었으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오늘의 아름다운 교회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 행복한 교회

주암햇빛교회는 ‘은혜가 있어 기쁨이 있는 교회, 말씀이 있어 체험이 있는 교회, 성령이 계셔 능력이 있는 교회, 축복이 있어 감사가 있는 교회, 사랑이 꽃피는 교회’임을 자랑하고 있다.

재가노인복지와 요양시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주암햇빛교회는 온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어르신 섬김에 앞장서고 있다. 농어촌 지역의 어르신들의 영혼 구원은 복지목회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정권 목사는 육체적으로 연약한 어르신들을 정성으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최선을 다해 모든 과정들을 도와주는 것을 보고 가족들의 마음까지도 변화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오늘의 시대는 점점 전도가 어려운 시대라고들 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택정하여 주셔서 부족한 사람이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아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목회 사역에 가장 힘을 쏟는 것이라면 마지막 생을 살아가는 삶, 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먹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로 하나님 앞에 영원한 자녀가 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임을 깨닫습니다.”

성경총회와의 통합으로 백석총회 한가족이 된 정권 목사는 증경총회장인 곽성현 목사와 같은 연합노회의 노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농어촌국장과 세계선교위원회 부이사장을 맡는 등 총회와 노회, 학교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열심히 섬김의 본을 보이고 있다.

정 목사는 “무엇보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며, 교인들이 행복하면 목회자가 행복하고, 교인과 목회자가 행복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현실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주암햇빛교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