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신 의술로 세상에 유익함 남기고파”
신앙과 삶-상계동 우리의원 원장 최종수 집사
잘 고치는 병원으로 입소문, 중앙시장의 ‘인사이더’
“하나님 만나니 굴곡진 인생도 은혜로 변해” 고백
해마다 의료선교…선교지에서 느끼는 특별한 은혜
상계동 중앙시장 초입에 위치한 우리의원. 가정의학과이자 통증전문인 우리의원은 지역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병원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코로나19’로 바깥 출입이 드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온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이 병원의 최종수 원장(영안교회 집사)은 ‘세계 선교를 꿈꾸는 동네 의사’다. 단순히 몸의 질병을 잘 고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찾아온 이들을 마음 다해 어루만져서 마음까지 낫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의술을 통해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해부터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싶은 마음에 성경 통독을 시작했다. 1독을 은혜롭게 끝마치고 올해 다시 통독을 시작했다. 성경을 읽고 환자를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알아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사랑을 담은 치료
대부분의 병원이 그렇겠지만 최 원장이 있는 우리의원은 특히 어르신 환자들 사이에서 ‘잘 한다’는 입소문이 나 더더욱 바쁘다. 서글서글한 의사가 친절할 뿐 아니라 잘 고치기까지 하니 당연한 결과다. 점심시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찾아갔지만, 밀려드는 환자들로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최 원장은 근처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다며 기자를 이끌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그는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들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즘말로 ‘인사이더’가 따로 없다.
속으로는 이것이 ‘영업비밀’인가 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깊은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신기한 이야기’가 있다며 최근 친한 동료 의사가 발표한 통증에 대한 논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면’ 통증이 개선된다는 의학적 기전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람이 느끼는 통증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세게 누르는 통증, 바늘로 찌를 때의 통증, 주먹으로 칠 때 전해지는 통증이 다 다르거든요. 각각 다른 감각 수용체를 통해 이뤄지죠. 이 감각 수용체들 가운데 ‘어루만지는 느낌’을 전달하는 수용체가 있는데요. 이 수용체가 발현되면 다른 통증, 즉 아픔이나 차갑거나 시린 것을 억제하는 의학적 기전이 증명 된 겁니다.”
‘어머니 손이 약손’이라던 옛 말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최 원장은 이 논문을 본 뒤로 자신의 진료 스타일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전에는 환자에게 말로만 설명했을 일도 이제는 가급적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려고 한다는 것. 그냥 만지는 것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담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아까 최 원장을 향해 인사를 건네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왜 그렇게 반색을 띠었는지 알 것 같았다.
최 원장은 “의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환자들을 대할 때 항상 기도를 한다고도 했다.
“환자들에게 주사 놓을 때 피가 나지 않도록 누르게 되는데 그 잠깐의 시간에 기도를 합니다. 이분을 낫게 해달라고요. 이런 행동은 한계를 느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병원을 찾는 환자의 70~80%는 60대 이상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집안에 굴곡이 심해 조부모님 밑에서 컸거든요. 노인과의 생활이 익숙하고 친근하달까. 이것도 미리 하나님께서 저를 준비시킨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어쨌든 어르신 환자가 오시면 더 잘해드리려고 합니다. 병원이 위치한 상계동이라는 동네가 부유한 곳도 아니고 노인 중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어려운 분들이 오시면 좋은 주사도 부담 안 가지시도록 무료로 놔드리곤 합니다.”
돌아보면 고난도 은혜
무탈하게 자랐을 것 같은 사람 좋은 첫인상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성장기가 혹독했다고 했다. 강원도 바닷가 마을 출신인 최 원장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야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벌써 억대의 채무를 짊어지기도 했다. 성장기를 돌아보며 ‘2년 주기’로 고난이 이어졌다고 했다. 대부분이 돈 문제였다.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자랐지만 고난의 끝에서 그는 이모가 다니는 교회, 그리고 하나님이 떠올랐다. 그길로 이모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었다.
예수를 믿었다고 모든 일이 다 해결되진 않았다. 의대에서 가정의학과를 선택했지만 지망하던 기관에서 레지던트로 일하지 못했을 때는 인생이 쓰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망했던 곳 대신 온 것이 바로 우리의원이었다. ‘페이 닥터’로 일하며 당시 원장으로부터 ‘통증’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3년 후에 다시 우리의원으로 와서 인수했다. 병원은 전임 원장이 하던 때보다 더 잘됐다. 결국 병원 건물을 한 층 더 확장해야 했다. 고난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후에 돌아보면 은혜였던 것이다.
어려서 감당 못할 일들을 많이 겪어서일까. 그에게는 웬만해선 두려운 게 없다. 이제는 오히려 힘든 일이 오면 ‘연단인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금전적 어려움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인지 돈에 대해서는 늘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지금도 돈에 대한 욕심을 다 버리지는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그이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십일조를 내기로 결심한 뒤로 빼먹은 적이 없다. 최 원장은 “저로서는 놀라운 일”이라며 “십일조뿐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위한 기부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십의 일조를 바치는 것이 아까울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음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선교는 나의 기쁨
최 원장은 3년 전부터 치과의사이면서 선교사인 동료의 권유로 단기 해외선교를 가기 시작했다. 봄에는 자신이 섬기는 영안교회에서, 여름엔 동료 의사와 함께 의료선교를 떠난다. 지금까지 캄보디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을 다녀왔다.
그는 선교지에 갈 때마다 특별한 은혜를 경험한다고 했다. 치유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를 몸소 체험한다는 것.
“보통 선교지에 갈 때는 의료장비를 많이 못 가져갑니다. 초음파도 보지 못한 채 치료하고 주사를 놓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선교지만 가면 치료 효과가 좋아요. 지난해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에도 기대했던 이상으로 환자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선교지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절로 나지요. 현상에 의문을 갖는 아카데믹한 성격을 가진 저로서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맞춤 은혜’를 주시는 것 같아요. 살면서 하나님을 직접 만난다거나 음성을 듣는 신앙적 체험은 해보지 못했어요. ‘이건 기적이다’라고 느낄만한 의학적인 경험도 없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스며들 듯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그는 최근 기독 의사들의 모임인 ‘누가의사회’를 통해 동료들과 교류를 쌓고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일에 푹 빠져있다. 매주 주말마다 대전까지 찾아가야 하는 강행군이지만 믿음의 동료들을 만나는 일이기에 전혀 힘들지 않고 매번 새롭고 즐겁다. 학술이사로 섬기고 있는 그는 최근 중보기도 모임에까지 참여하게 됐다. 누가의사회는 사단법인화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주일이면 가족과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아이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하루하루지만 그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삶이 전보다 더 나아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음을 느낀다”며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