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선언(9) (1531년)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 -88
믿음과 선행
츠빙글리는 왕 앞에서 자신이 받는 오해에 대해 해명한다. 자신을 선행을 금하는 자로 중상모략 때문이다. 그러한 비방은 근거 없는 것으로 전적으로 옳지 않기에(hoechst ungerecht),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성에 근거하여 믿음과 선행의 상관성을 밝힌다. 특히 선행이 인간의 그 어떤 결단 없이 행해져야 한다거나, 또는 결단 없는 선행은 선행이 아니며 우연의 결과여야만 한다면, 츠빙글리는 이를 아주 어리석은 것으로 규정한다. 믿음이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무익한 것이다. 츠빙글리는 믿음과 함께 하는 선행이야말로 진정한 선행이며, 믿음으로 하지 않은 일은 죄로, 믿음으로 행하지 않은 선행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명예를 위해서, 또는 뭔가를 노리고 나온 선행은 나쁜 의도에서 출발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믿음 없이 행해지는 선행은 죄로서, 롬 14:23을 따르면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다.
천국 상급
츠빙글리는 면죄부, 연옥 교리, 성직자의 독신 서원, 다양한 수도회와 미신들이야말로 하나님에게 참으로 역겨운 죄로 정죄한다. 가난한 자, 배고픈 자, 목마른 자, 벗은 자, 감옥에 갇힌 자에게 베푼 선행은 분명히 상급을 받지만,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무익한 종으로 여길 뿐이다(누가 17:10). 그러한 선행들이 하나님의 의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할 수 없다. 착한 행실이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없고(롬 3:21~28; 갈 3:11~14), 누구도 십자가에서 흘러넘치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요한 14:6). 우리의 공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무한한 자유 가운데서 은혜로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기로 택하셨다.
마태 10:42에서 말하는 선행에 대한 상급이란 그냥 인간적으로(in menschlicher Weise) 인간 차원에서 이해함이 좋다고 츠빙글리는 말한다. 상급의 유무를 떠나서 선행하는 인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로 이해해도 좋겠다. 츠빙글리는 이 대목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가져온다. 인간은 선행을 통해서 어려운 이웃을 고난에서 건져내고, 그 사람은 그 대가로 존경과 높임을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하는 사람에게 앞서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누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선행을 할 수 있겠는지! 선행이란 은혜로 구원받은 인간을 통해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누가 선행에 대한 상급을 받을 것인지 자명하다. 선행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경건한 성도는 선행을 중단할 수 없고, 믿음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열심히 선한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마태 17:20; 마가 11:23), 보상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선행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그 선행의 근거이다. 한마디로 말해 츠빙글리에게 천국에서 받을 상급은 없는데, 성도가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가 넘치도록 우리의 삶에서 이미 그 상급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성도가 누린 구원이 현세와 내세에서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