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정치 얘기에 성경은 그만 붙여주세요!”
분열의 시대, 목회자들이 취할 태도는?
우리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벌써 70년을 향해가는 남과 북의 분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라는 이름으로 남과 남이 서로를 향해 칼날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평화의 사도로 나서야 할 크리스천조차 지금의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로는 목사라는 직함을 가진 이가 정치전선의 최우선에서 극단적인 목소리를 쏟아내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명확히 분별하기 쉽지 않은 시대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정치 이야기가 등장했다하면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고 어느새 고성이 오간다. 그 누구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견해를 꺾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런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사회와 교회의 갈등을 마주하는 목회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를 짚어봤다.
목회자 신분으로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정장복 교수(전 한일장신대 총장)는 첨예한 갈등의 시대를 사는 목회자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목회자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는 정치에 관여하고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지만 목회자의 신분으로서는 어느 쪽도 소속될 수 없다는 것.
정 교수는 “부정과 부패가 있을 때처럼 모두 함께 정의를 부르짖어야 할 때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지금은 각자의 견해를 가지고 반으로 갈라져 서로 옳다고 외치고 있는 시대”라고 진단하면서 “이런 때에 목회자는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정교분리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 교수가 경계한 것은 성경말씀을 들먹이며 정쟁에 나서는 것이다. 목회자가 성경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치적 논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목회자가 성경 말씀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대치되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성경 말씀에 기준을 두고 목회자가 따라야 하는데 자신이 기준을 세워놓고 성경 말씀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정 교수의 조언에 반해 목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정치일선에서 극단적인 발언을 연일 쏟아내는 인물도 있다.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 정치적인 선동에 가깝다”고 지적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적지 않은 수의 교인들이 거기에 이끌려 올바른 세계관을 정립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젊은 사람들에게 적대해야 할 단체로 여겨지고 점점 더 고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몇몇 소수의 극단적 행보가 이런 경향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며 “한국교회의 미래와 복음 전파의 사명에 대해 고민한다면 이런 점을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갈등 사이, 목회자는 ‘경청하는 자’가 돼야
목회자가 강단에서 정치 이야기를 자제하는 것으로 교회 안에도 갈등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서로 다른 정치성향을 가지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교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목회자로서는 어느 쪽을 편들 수도 없는 곤란한 입장이 되고 만다.
정장복 교수는 교인들 사이에 정치 논쟁으로 불이 붙는다면 목회자는 경청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목회자가 악의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해도 자칫 갈등 심화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정 교수는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경청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면서 “그저 들어주는 것이 상담이고 목회다. 목회자는 교인들이 정치 이슈를 꺼낸다면 경청하면 될 뿐 섣불리 호응하거나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설교학의 대가이기도 한 정장복 교수는 목회자들이 설교를 통해 화합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 시대 목회자들에게는 청인회(聽忍懷)의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각각 들을 청(聽), 참을 인(忍), 품을 회(懷)를 뜻하는 청인회는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에게 군주가 갖춰야 할 자세로 조언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 무언가 행동해야 할 것 같은 심정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목회자라는 직분을 생각하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듣고, 참고, 품는 것”이라며 “화평이란 좌와 우의 날카로운 선두에 서서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보다 성경적 가치관을 먼저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성돈 교수는 이 시대의 갈등과 분열이 우리 사회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증거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 역시 목회자가 정치적 견해를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목회자와 교회의 역할은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사실 교회에서의 정치 논쟁에 대해 목회자가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좋은지, 혹은 덮어놓고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목회자들도 답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정치적 대립 속에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분별하기 힘든 시대에 교회가 복음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