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칼럼]‘자랑질’, 왜 그대는 하지 않는가?

2016-03-15     운영자

요즈음 세상은 ‘1인 왕국’이요, ‘1인 우주’인 듯 합니다. 얼마든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거나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왕이 많은 충성된 신하를 거느리고 싶어하듯 사람들도 자신의 독자이자, 팬, 또는 충성스런 팔로우를 거느리고 싶어합니다.  

특히 부모님들은 자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다보니 자녀의 실패나 좌절, 힘든 상황은 알리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 동지들의 모임 경우는 아니겠지요. 가장 잘 나온 사진, 가장 근사한 장면, 가장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올려놓습니다. 연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평신도나 목회자나 가릴 것 없이 자기 자녀들의 자랑스러운 근황을 수시로 올려놓고 알립니다. 요즘 아이들 말대로 ‘자랑질’이지요. 목사님들의 설교처럼 자신의 실패나 가족의 어려움을 자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한다면 그것을 극복해거나 잘 해결되어서 좋은 상황이 되었을 때에 알리지요.
사람들은 심하게 말하자면 ‘미치도록’ 자랑질에 점점 중독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그 ‘자랑질’의 종류입니다. 크게 두 가지의 경우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신이나 자기의 것(가족이든 물건이든)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잘난 점, 성공한 것, 자기 가족의 편안함, 배부르게 먹음, 일류대 합격, 좋은 옷 등을 알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변질된 자랑질입니다. 마치 악마의 쇼처럼 느껴지는 것인데 며칠에 한번씩 전해지는 뉴스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애완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 주위 사람을 무섭도록 괴롭히는 장면, 돈 자랑하는 모습 등…. 그러니 사치스런 해외여행이나 밭을 갈아 엎듯 성형수술을 한 뒤의 모습을 매일 올리는 것쯤은 이제 일도 아닙니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학생들의 교복치마는 왜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인가요? 그것도 사실 자랑질입니다. 다리가 길어 보이고, 좀 더 예뻐보이게 하려는 몸부림이지요. 이제 햇살 눈부신 봄이 되며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몸매에 신경 쓰느라 밥을 굶는 것도, 그 여린 피부에 화장품을 쉼없이 붓칠하는 것도 ‘나를’, ‘나만’ 봐달라는 자랑질이지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판에 한 사람이 눈치를 보듯 슬그머니 ‘내가 지난 주일 예배 설교 시간에 어떤 은혜를 받았는 줄 알아?’ 또는 ‘우리 교회에서 이번 토요일에 청소년 회복 기도회가 있는데 같이 갈래?’, ‘내가 오늘 아침에 말씀을 읽었는데……’ 하면 분위기는 가라앉습니다. 흥미 없어 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 좀 자랑하려고 하는데, 내가 죄 지은 것을 절절히 회개한 것을 알리려 하는데, 함께 은혜 받고 싶어 전하는데…. 이런 것은 자랑질 취급은커녕 눈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지난 가을, 나의 지인들이 관절에는 호랑가시나무잎을 달여 먹으면 좋다며 지방 어느 산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관절’을 위해 그 방면에 지식과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혼과 영생을 위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듣기 힘들어합니다. 관절을 위해서는 돈을 들이고 시간을 내어 먼 산속을 헤매고 다니면서도 영혼을 위해서는 동네의 교회 문턱도 밟기 어려워합니다. 아이들도 그렇지요. 입고, 먹고, 놀고 하는 것을 위해서는 공부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의식주’를 위해서는 아무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 무슨 자랑질을 하겠나요? 

우리가 진정으로 자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성공만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실패와 그것을 극복해낸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랑했습니다. 그 첫 예가 신약성경에서 본다면 마태복음의 예수님이 족보, 그리스도의 계보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나 가족의 실패나 약하고, 불완전하며, 가난한 것은 그저 수치로만 여깁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주인이요, 왕이신 예수님을 자랑하지도 못합니다. 왜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라 허망한 것을 날마다 자랑하면서도,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신 성령님을 자랑하지 못한 채 세상 눈치만 보는 졸렬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빵  
자랑
- venditátĭo(벤디타티오 - 라틴어) 여기서  ‘vendi’는 판매, 매매, 비싼 값에 팔려고 내놓은 등등의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자랑질하며 무엇을 팔고 있나요? 결국 자신을 파는 초라한 꼴이 아닌지요? 우리는 더 이상 장사꾼이 아닌 ‘거저 받은 복음을 거저 주는’ 귀한 ‘복음 자랑꾼’이 됩시다.

기도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욥기 20장 5~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