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만드는 거룩한 열정
절망의 그늘에 생명의 빛을, 카이퍼의 개혁주의 미학 (21) - 안용준 목사(목원대 겸임교수)
2013-06-25 운영자
변화를 만드는 거룩한 열정
요즘에는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에 기초한 산업화의 성공모델만 쫒아가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것이 인간을 위한 최고의 시스템 같아 보여도 성경적 관점 없이 작동된다면 인간의 탐욕을 절제하기 어렵다. 사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성경적 생명의 논의와 관련 없는 실천이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가? 우리 앞을 가로막아선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질문이지만 스치듯 지나칠 수는 없다. 우리의 인생이 동호회 안에서 행해지는 취미활동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 믿음으로 세상의 중심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도 있다.
카이퍼에게도 거대한 산과 같은 장벽이 있었다. 그는 ‘대립(antithesis)’이 숨 쉬는 모더니즘의 현장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교회는 떠오르는 국가 권력과 계몽주의의 합리론자의 비판에 직면하여 자율성과 통합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것은 카이퍼에게 깊이 각인된 개인적인 문제인 동시에 당시 의식 있는 크리스천에게도 지배적인 문제였다.
영향력 있는 자유주의 신학도 창궐하기 시작했다. 바우어(Ferdinand Christian Baur, 1792-1860)는 신약성경 연구에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시켰으며 스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는 예수님의 삶에 관한 자료에 합리적인 비판을 가했다. 또한 성경의 영감, 통일성, 성경 기자들에 대한 정통적인 가르침을 반대한 벨하우젠(J. Wellhausen, 1770-1830)등도 기독교의 절대성을 무너뜨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다.
자유주의적인 신학의 발흥과 이념의 발달은 점차적으로 영적 구원의 메시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수용하지 못하고 영적인 활동의 축소를 초래하였다. 카이퍼는 이런 형태의 문화적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종교적 영감의 원천과 단절된 양식이란 근본적으로 창조적인 예술양식을 산출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18세기의 합리주의나 1789년의 원리”에서 전도된 예술이 창조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가 계획하는 ‘대립’의 영향 아래 있는 모더니즘 예술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 안에서 거룩한 열정과 영감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예술이 견고케 되며 보다 풍부하게 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카이퍼의 판단으로는 인간의 의지만을 반영하는 모더니즘의 광범위한 세계관에 대하여 반증을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은 오직 개혁주의 믿음(Reformed faith)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